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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김우상/北변화 ´자의半 타의半´

입력 | 2002-09-19 17:04:00


17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양국 수교회담의 걸림돌이었던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국교정상화 교섭이 10월에 재개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북-일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16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이라크 주민을 위협하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곧 군사조치를 취할 태세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이라크와 같은 군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북한정권이 북한주민에게 위협이 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주변외교 ´6자체제´ 전환▼

18일에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공사가 남과 북에서 동시에 착공됐다. 2년 전 남북한은 이미 경의선 동시 착공을 약속했지만 북한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제야 남북한간 철도 연결 공사가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한반도와 주변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암시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미·중 ‘4자회담’ 체제가 일본과 러시아를 추가한 ‘6자체제’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일본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북-일 경제협력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물론 양국간 경제협력은 수교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수교가 성사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다. 피랍 일본인 사망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일본 국내 여론, 피랍 생존자 처리, 미국의 대북정책과의 속도조절 등 풀어야 할 난제들이 남아 있다. 어쨌든 새로 시작된 북-일수교 과정을 통해서 일본은 북한의 태도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연결공사가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지면 한반도종단철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반도종단철도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될 경우 남북한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얻게 될 경제적 혜택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고, 남북한과 러시아는 화물수송을 통해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게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의 연결을 적극 지지해왔다. 남북한간의 철도 연결공사는 남북한간의 경제협력 및 군사신뢰 구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북-일수교와 남북 철도연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북한이 수교 및 철도연결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9·11테러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탈피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타깃으로 정했다. 김정일 정권은 미국이 취할 군사조치의 다음 목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져 있다. 북한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미국에 전해 줄 것을 요청한 것도 그런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 실험 발사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핵 문제에 있어서 국제적 합의를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남한과는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해 필수적인 비무장지대 지뢰제거작업 및 군사당국간 직통전화(핫라인) 가설에 합의했다. 즉 북한은 한국과 일본의 힘을 빌려 군사 신뢰구축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줌으로써 미국발 공포로부터 탈피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日-러 적극활용을▼

둘째, 북한은 7월 1일 경제개혁을 추진하기로 한 이후 외부의 경제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북-일수교가 성사될 경우 일본의 경제협력은 북한의 경제난 해소에 결정적 힘이 된다.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공사비용으로 남한으로부터 500억원 이상의 지원을 받는다.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군사적, 경제적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자의반 타의반 남북관계 개선, 북-일수교 협상, 북-미대화 재개로 나가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자의에 의해 완전개방과 화해협력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과 러시아의 관심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가 북한의 태도변화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미국의 대북정책 역시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김우상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kws@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