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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의 건강세상]흉부외과의 종언?

입력 | 2002-09-15 17:26:00


13일 오후 6시 연세대 의대 대강의실에서는 ‘흉부외과 인턴 설명회’가 열렸다.

선배 의사들이 후배들에게 “흉부외과도 괜찮은 과이니까 지원해 보라”고 ‘유혹’하는 자리였다.

의대와 병원 곳곳에 붙은 안내 포스터에는 교수들이 야유회에서 ‘코주부 마스크’를 쓰고 격의 없이 어울리는 사진 등이 실려 있었다. 교수로서의 체면을 버려서까지 한 사람의 전공의라도 더 확보하려는 고육책으로 보였다.

행사가 끝나자 교수들은 회식자리에서 젊은 의사들에게 흉부외과에 대해 ‘맨투맨’ 홍보전을 펼쳤다. 한 교수는 “정원 4명 중 절반을 채우면 성공”이라고 말했다.

한때 흉부외과는 ‘병원의 꽃’이라고 불렸다.

후발 병원으로 단시간에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등과 어깨를 견주게 된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이 출범 초기에 가장 역점을 둔 분야도 흉부외과였다. 서울아산병원은 손광현 송명근 서동만 교수, 삼성서울병원은 채헌 박표원 심영목 교수 등 전국의 ‘칼잡이’들을 스카우트해 집중 지원했다.

그러나 지금 흉부외과는 외면을 받고 있다. 8월 전국 92개 수련병원의 전공의 모집 결과 흉부외과는 24명 정원에 1명만 지원했다.

우선 일이 힘들다. 지원자가 적다 보니 일은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개원하기 힘들다는 점도 기피의 큰 요인이다.

의료계에서는 “심장병과 폐암 환자는 증가하는데 의사는 줄어서 이들 질환이 생기면 외국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고 갑자기 심장 동맥이 파열되면 그냥 숨져야 할 사태가 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의료계에 누적된 온갖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힘들게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분야의 의사가 그렇지 않은 성형외과 안과 의사보다 수입이 적다. 같은 분야라도 대학병원 교수보다 개원 의사의 수익이 더 많으며 노동 강도가 수익에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

의대 교육 과정도 문제다. 의대는 의학 지식의 전달에만 그치고 있고 졸업생은 고수익을 얻는 전문인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최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의대 개혁안이 나왔지만 반대 의견만 분분하고 대안은 없다.

최근 필자에게 한 수련의로부터 e메일이 왔다. 전공을 결정하려는데 4, 5년 뒤 유망한 과를 추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귀하가 가장 보람있고 자신있는 분야를 선택하라”고 답장을 썼다.

동아일보사에서는 지난 3년 동안 베스트 닥터, 베스트 중견의사 등 최고 명의를 찾는 시리즈를 연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류(時流)를 쫓기보다는 자신이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었다.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