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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임채청/커닝

입력 | 2002-09-10 18:32:00


커닝(cunning)은 대표적인 콩글리시다. 그러나 본뜻(교활한)이 커닝의 속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므로 어색한 편은 아니다. 제대로 된 영어는 ‘속이기’라는 뜻의 치팅(cheating)이다. 그렇다고 커닝이 ‘외래문화’는 아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부정행위가 적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베껴 쓰기, 답안지 바꿔치기, 대리시험, 문제 사전 유출 등 그 유형도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콧구멍 속에 커닝페이퍼를 숨긴 채 과장(科場)에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커닝페이퍼를 협서(挾書)나 협책(挾冊)이라고 했다.

▷시험의 역사만큼 커닝의 역사도 동양이 서양보다 더 유구한 것 같다. 춘천교육대 심우엽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중국에서 몇 년 전에 발견된 깨알같은 글씨의 작은 책 두 권이 명나라 때의 커닝페이퍼로 밝혀졌다고 한다. 또 조선시대 과장으로 쓰였던 성균관 반수당에서 발견된 새끼줄이 들어 있는 대나무통은 외부에서 작성한 답안지를 과장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커닝도구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난해 북한에서 발간된 월간 ‘아동문학’에는 ‘곁눈질 말아/5점(만점) 답안 내고 나면/웃을지 몰라도/고운 마음 덟어(더러워)지니/곁눈질 말아’라는 동요가 실려 있다. 북한 학생들도 커닝의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커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일상화된 느낌이다. 최고학부인 대학원도 예외가 아니다. 시험시간 직전 책상 위에 부지런히 뭔가 쓰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책상을 바꿔 시험을 치도록 하기까지 하겠는가. 지난달에는 예비법조인인 사법연수원생이 커닝을 하다 들켜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은 일도 있다. 휴대전화 커닝, 사이버 커닝 등 커닝 수법 또한 갈수록 첨단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설문조사 결과 미국의 고교생 중 74%가 커닝을 한 적이 있으나, 대다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외신보도도 있다.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대학시절 커닝을 하다 정학당한 것을 시인했다. 전 과목 수강취소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을 보면 정 의원이 꽤 ‘중죄’를 범했거나 아니면 감독관이 매우 엄했던 듯하다. 단순히 커닝하다 적발되면 해당 과목만 낙제점을 받는 게 통례이기 때문이다. 심우섭 교수는 논문에서 윤리의식이 낮고 자제력이 약한 학생,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학생이 부정행위를 많이 한다고 썼다. 당시 정 의원의 경우는 어느 쪽이었을지 궁금하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