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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피해/강원]강원도 원일전리 현장을 가다

입력 | 2002-09-04 18:10:00


강원 양양군 양양읍내에서 10㎞ 정도 떨어진 현북면 원일전리. 4일 낮 군 헬기편으로 찾아간 그곳은 산 속의 ‘외딴 섬’이었다.

해발 13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인 이 마을은 도로가 폭우에 유실되고 다리마저 끊어져 닷새째 고립된 상태다.

인근의 일출부대에서 하루 두세 번 운항하는 헬기가 ‘섬’으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주민들은 ‘바깥 세상’ 소식을 몰랐다. ‘강릉이 물바다가 됐다’는 얘기를 군인들에게서 전해들은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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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벼락을 맞은 지 닷새째지만 전력과 수도는 물론 통신마저 끊어진 상태였다. 외부와 통하는 59번 국도는 지도상에만 있는 길이었다.

남대천을 따라 뻗어 있던 도로는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 기능을 상실했다. 원일전리는 49가구 중 17가구의 가옥이 부서지거나 침수됐고 주민 123명 중 40여명이 이재민이지만 의약품만 일부 지원받았을 뿐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구급약을 실은 군 헬기가 마을에 내리자 돌과 나무를 이용해 다리를 놓고 있던 주민들은 일손을 멈추고 헬기를 바라봤다.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뉜 양지마을과 음지마을을 이어주던 길이 100m의 다리가 끊어지는 바람에 두 마을 주민들의 왕래도 불가능해졌다.

양지마을 주민 박석원씨(65)는 음지마을에 사는 형(78)에게 매일 문안인사를 다녔지만 요즘은 남대천 너머를 바라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자신의 집이 강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는 형님 걱정이 앞섰다. 박씨는 “형님이 기관지가 안 좋아 이틀에 한 번씩 양양읍에 있는 병원에 다녔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주민들은 자신들 처지보다는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수해를 입지는 않았는지 더 걱정했다.

▼“새벽엔 너무 추워요”▼

고립생활이 길어지면서 주민들의 고통도 더해 가고 있다.

난방시설을 가동하지 못해 주민의 절반이 넘는 60대 이상 노인들은 새벽마다 추위에 떨고 있다. 강재복 할머니(65)는 “이불을 몇 개씩 덮고 자지만 새벽이면 추워서 잠에서 깬다”고 말했다.

눈병 환자가 생겨도 안약만 넣을 뿐 다른 방법이 없는 실정. 일출부대 군의관 홍창균 대위는 “6명이 아폴로 눈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데 마을 전체로 번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만준 이장(58)은 양양군으로 돌아가기 위해 헬기에 오르는 기자와 군인들에게 “빨리 복구되게 힘 좀 써달라”며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양양〓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