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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회계부정 핵심 외면” 비난고조

입력 | 2002-07-12 18:21:00



《“기업이 부도나기 직전 최고경영자(CEO)들은 수천만달러를 보너스로 챙겨가고 종업원과 투자자들만 고통에 빠지고 마는 것을 우리는 봐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기업 회계부정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는 가운데 9일 뉴욕 월스트리트를 방문해 기업개혁을 외치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기업범죄에 대한 처벌강화 등 개혁방안을 내놓으면서 정작 ‘CEO들의 강력한 무기’로 불리는 스톡옵션(자사 주식 매입선택권)은 건드리지 않아 ‘핵심을 비켜 갔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스톡옵션 충격〓엔론, 글로벌크로싱, 월드컴 등 파산 또는 파산 위기의 대기업 경영진은 갖은 방법으로 주가를 높여놓은 뒤 스톡옵션을 행사해 거액을 챙겼다. 엔론의 전CEO 제프리 스킬링은 파산 직전 주식을 팔아 1억1200만달러를 손에 쥐었다. 타이코의 CEO 데니스 코즐로프스키도 해고 직전 2억4000만달러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회계부정이 탄로나 주가가 곤두박질쳤을 때는 이들이 손을 턴 뒤였고 다른 투자자와 금융회사들만 손해를 떠안게 됐다.

주가가 일정 수준(행사가격)이 되면 일정 수량의 주식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은 경영진에게 경영성과를 나눠줌으로써 경영을 잘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경영성과가 모두 반영돼 있는 주가가 오르면 경영진도 이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러나 이 제도는 최근 스캔들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회사 실제 경영상태와는 관계없이 주가만 끌어올리면 경영진이 큰돈을 벌게 되는 것으로 변질됐다.

스톡옵션은 △경영진으로 하여금 단기실적과 주가를 지나치게 중시하게 만들고 △회계상 기업의 비용으로 계상되지 않으나 실제로는 장기적으로 기업 이익을 깎아먹으며 △세금감면 혜택이 있어 정부재정이 축나는 등 경제적 충격을 준다고 11일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주주들의 반란〓경영 기여도를 훨씬 넘는 스톡옵션을 챙기려는 최고경영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주주들이 많아지고 있다. 스톡옵션이 거부된 비율이 1995년 16.2%에서 작년 23.4%로 늘었다고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7월15일자)가 보도했다. 5월엔 최고경영진에 다량의 스톡옵션을 부여하려던 미국의 존스 어패럴 그룹은 주주들이 들고일어나자 이를 철회했다.

▽스톡옵션 회계처리 논란〓현재 일반적인 스톡옵션은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비용으로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5월 “경영진이 보수로 받는 스톡옵션은 지속적인 영업활동의 범주에 드는 것이므로 비용으로 계상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해보니 2000년 S&P 500 대기업의 순익이 보고된 것보다 9%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국제 회계표준을 정하는 런던 소재 국제회계표준위원회(IASB)가 스톡옵션의 비용 처리 방안을 마련했으나 미국 기업인들은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비즈니스위크는 전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비용 계상’에 찬성하고 있다.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은 5월 “스톡옵션이 행사될 때 장부에 비용으로 올리자”는 사견을 밝혔다.

칼 레빈 상원의원(민주·미시간주),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애리조나주)이 “기업이 스톡옵션에 대해 감세 혜택을 받으려면 이를 비용으로 계상해야 한다”면서 제출한 법 개정안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 편향적인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는 이 같은 규제방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또 부도 직전에 주식을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를 떠나거나 취득 후 일정 기간 후에 주식을 팔 수 있게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지만 부시 정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