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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경직된 ‘햇볕 인식’부터 바꿔야

입력 | 2002-07-08 18:43:00


햇볕정책의 기본은 남북 평화공존에 있다. 북의 의도적 도발로 햇볕정책의 기본인 평화가 깨졌다면 그 원인을 찾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그런데도 청와대 측이 햇볕정책 때문에 서해교전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여전히 ‘햇볕정책의 무오류성(無誤謬性)’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한다.

박선숙(朴仙淑)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일부에서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의 도발이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과거 남북간 적대감과 긴장 속에서는 더 많은 북한의 도발이 있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이후의 도발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북의 도발이 햇볕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번 북측의 서해만행과 햇볕정책이 전혀 무관하다는 인식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설령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의 도발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햇볕정책의 문제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이 이 정책의 목표라면 결국 이번 서해교전은 햇볕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서해교전에서 나타난 우리 군의 대응태세에서 햇볕정책의 허점은 명백하게 드러났다. 햇볕정책에 근거한 김 대통령의 ‘4대 수칙’이 북의 기습공격에 우리 해군이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햇볕정책으로 우리 군의 안보태세가 해이해졌다는 것 또한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사실이다.

햇볕정책은 ‘불변(不變)의 도그마’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지 못하는 경직된 햇볕정책은 오히려 국가안보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물며 지금은 북의 도발과 햇볕정책은 무관하다는 ‘한가한 주장’을 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햇볕정책이 북의 도발을 자극한 간접요인이었을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자면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인식부터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