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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동아시아-유럽 부채명품 200점 화정박물관서 전시

입력 | 2002-06-11 17:29:00


북극 지방의 에스키모도 부채를 이용했다.

그들에게 부채는 불을 지피기 위한 ‘수동 선풍기’였다.

17, 18세기 유럽에선 부채는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자 연애 같은 은밀한 의사 소통의 수단(부채 언어)이기도 했다. 여름철 햇빛을 가리거나 무더위를 식히려는 ‘바람몰이’는 부채 쓰임새의 기본에 불과하다.

부채는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전세계 곳곳에서 사용됐다. 서울 화정(和庭)박물관이 12일부터 9월29일까지 마련하는 기획전 ‘유럽과 동아시아 부채’는 유럽 일본 중국 한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명작 부채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도록을 미리 본 몇몇 주한 외교 사절의 부인들이 개막전에 다녀갔고 대영박물관의 로버트 앤더슨 관장도 팩시밀리 전문으로 “전시된 부채의 격조가 높고 색조가 아름답다”며 관심을 전해왔다.

전시 부채들은 화정미술관을 운영하는 한빛문화재단의 한광호 이사장이 소장한 800여점과 재단이 지닌 300여점 가운데 200여점을 간추린 것이다. 한 이사장은 40여년간 부채나 티베트 미술품 등을 수집해왔다.

전시작들은 부채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비롯해 17∼19세기 유럽 중국 등에서 유행한 풍류의 일면을 드러낸다. 유럽의 ‘채색접선’은 태어나지 않은 새끼 양의 가죽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런 부채들은 귀족 신분의 상징이었다. 접선(접는 부채)은 17세기경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됐다.

함께 선보이는 ‘브리제 부채’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상아로 만들었으며 갓대를 보석으로 장식할만큼 화려했다. 공작새나 타조 깃털 등을 이용한 ‘깃털 부채’도 접선 이전에 유행한 부채들이다.

부채에 조각과 회화, 치밀한 세공을 모두 담고 있는 중국의 ‘채색풍속화접선’도 부채의 예술성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태극선 효자선 등 한국 부채들은 다양하면서도 장식이 적어 다른 나라의 부채들과 대조를 보인다. 문의 02-798-1954

▼한광호 한빛문화재단 이사장 "보물 공개 가슴 벅차요"▼

“흥분됩니다. 40년간 고이 감춰둔 보물을 세상에 처음 내놓는 기분입니다.”

한광호 한빛문화재단 이사장(74)은 12일 화정박물관의 ‘유럽과 동아시아 부채’전 개막을 앞두고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박물관 설립을 위해 40여년간 수집해온 여러 가지 명품중에서 부채만을 골라 선보이는 전시는 처음. 그동안 지인들이 한번 보자고 해도 속시원히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명예 회장인 한 이사장은 1997년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의 한국전시실 설립에 거액의 후원금을 희사했던 미술품 마니아다. 화정박물관이 99년 개최해 일본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티베트의 미술’전의 전시작도 대부분 그의 소장품. 이 전시는 내년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유럽을 순회한다.

‘유럽과 …’의 전시작도 한 이사장이 현역 기업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해외 출장 시간을 쪼개 ‘발품’을 팔아 수집한 게 대부분이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마카오 전 총독의 딸이 명품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을 설득해 구하기도 했다.

한 이사장은 “한국 미술품 애호가들이 많아 내 컬렉션의 차별화를 위해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의 미술품이나 부채 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한빛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약 2만여점으로 해외 명품이 많다.

그는 “미술품 컬렉션은 돈이 있어도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마음의 코가 없으면 하지 못한다”며 “40년 계획을 이루려면 미술관 확충 등 해야할 일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사장 등을 지냈다.

허 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