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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왕관 벗은 견훤-궁예 바람둥이 됐네"

입력 | 2002-05-19 16:53:00

바람을 피우다 부인(윤미라)에게 들켜 집밖으로 쫒겨나는 서인석


올해 초까지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KBS1 대하사극 ‘태조 왕건’에서 세상을 호령했던 견훤(서인석)과 궁예(김영철)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기에 대한 주위 반응과 스스로의 만족도가 크게 엇갈려 눈길을 끌고 있다.

두 사람이 변신을 선택한 장르는 코믹과 멜로. 서인석은 SBS 주말극 ‘그 여자 사람잡네’에서 바람둥이에 허풍쟁이인 졸부 백수산으로 출연한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용돈을 타쓰는 그는 바람을 피우다 아내와 아버지에게 들켜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고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이웃에게 돌린다.

김영철의 변신도 파격적이다. MBC ‘위기의 남자’에서 첫사랑의 여인과 바람을 피우다 아내에게 들켜 제왕(궁예)의 카리스마를 완전히 ‘구기고’ 있는 것. 분노한 아내가 던진 솥단지를 머리에 맞아 상처가 나고 자신을 벌레보듯 하는 아내의 시선에 매번 고개를 숙인다. 20일 방송에서는 그나마 짓던 버섯농사가 망해 버섯밭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변신 이후의 반응. 서인석은 “‘태조왕건’ 이후 일부러 견훤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의 배역만 골랐다”며 “무거운 이미지를 벗어버리니까 삶이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들이 견훤의 이미지에 얽매여 다른 배역을 맡아도 그 속에서 견훤의 연기 코드를 읽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첫사랑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현장을 부인(황신혜)에게 들킨 뒤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김영철.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만큼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뜻”이라며 “견훤의 이미지가 완전히 잊혀지면 시청자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철측은 “스토리가 당초 기획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김영철측은 “평범한 40대 남성의 심리를 담으려 했으나 삼각불륜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파렴치한 속물로만 비춰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얼마전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제작진과 배역 마찰 의혹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가에서는 “동주가 속물로 그려지고 있다고는 하나 극중 모습은 우리 시대의 평범한 40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중견 연기자들의 변신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미지수. 그러나 시청자들은 “두 연기자들의 연기 폭이 그만큼 넓다는 것”이라며 “김영철은 스스로 다소 불만스럽다고 하지만 어쨌든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연예계 정글의 법칙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