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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남찬순]민주당의 ´생각´은 무엇인가

입력 | 2002-04-01 18:30:00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주자인 이인제(李仁濟) 후보와 노무현(盧武鉉) 후보 간의 이념 공방이 뜨겁다. 관전하는 시각도 다양하다. 요즘 세상에 좌우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무용론도 나오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념논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념과 정책에 따라 정당을 좌우로 자리매김할 때 보통 제일 왼쪽에 위치하는 극좌 정당은 공산당이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극우 정당으로는 파시스트당을 든다. 이 후보가 노 후보에 대해 유럽의 좌파보다 더 왼쪽에 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공산당에 가깝다는 얘기다. “재벌은 해체되어야 한다. 토지와 재벌주식을 정부가 매수해 노동자에게 분배하자”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자”고 한 노 후보의 과거 발언은 경위야 어떻든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노 후보는 “당시 발언과 지금 생각은 같지 않다. 이념공세는 일부 극우언론과 한나라당, 군사독재정권, 부당한 기득권 세력이 항상 써먹는 수법이다”라며 발을 빼려하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발목을 잡으려는 주자와 이를 팽개치려는 주자간의 세(勢)싸움은 더욱 격렬해질 것 같다.

▼이념공방 필요하다▼

관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 후보의 이념적 바탕이 정말 그런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이 후보가 괜히 물고늘어지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 주자간의 이념공방이 불붙기 시작한 시점은 우세였던 이 후보와 열세였던 노 후보간의 세가 반전된 직후다. 그래서 이 후보의 대세가 그대로 갔을 경우 과연 지금과 같은 이념공방이 시작됐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념공방의 판은 벌어졌다. 이제는 덮어두고 넘어가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원래 예비선거의 목적은 대권경쟁에 뛰어든 사람들의 사상이나 정책, 인물의 됨됨이나 지도자의 자질 등을 사전에 검증하자는 것이다. 경쟁자들을 모두 벗겨놓고 장단점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특히 우리는 남북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다. 주자들의 대북(對北)인식이나 정책 방향을 미리 검증하는 과정은 집권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민주당 주자간의 이념 공방은 그 발단이나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든 좋은 정치적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사상과 이념에 대해 터무니없는 올가미를 씌워 공격하는 이른바 색깔론은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색깔론에 불과한지 아닌지의 판단은 유권자가 할 일이다. 이념검증 주장이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아니면 이념과 사상의 근저에 대권 주자로서의 부적격한 요소는 없는가를 가리는 일은 유권자의 몫이다. 따라서 유권자의 선택을 겨냥한 두 주자간의 철저한 자기 옹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을 두고 경선의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비난한다면 속 좁은 생각이다.

민주당도 두 주자간의 치열한 이념공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정당들은 좌와 우의 중간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중도 우파니 중도 좌파니 하는 정당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그같이 좌우로 이동하는 ‘운동의 폭’은 점차 좁혀지고 있다. 유권자들의 성향이 중간쪽으로 몰려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역시 어떤 특정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이 아닌, 중산층과 서민에 지지기반을 둔 대중정당이다. 혁신이나 급진적인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아닌, 진보와 보수의 색깔을 동시에 띤 정당이다.

▼민주당도 입장 밝혀야▼

그렇다면 두 주자간의 이념공방에 대한 민주당의 견해는 무엇인가.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을 등에 없고 대권 경쟁에 나섰다. 다른 당의 경선에 나선 민주당 인사가 아닌, 민주당 경선에 나선 민주당 당원들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노선과는 거리가 있는 이념공방이 벌어진다면 유권자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근에는 민주당의 벽을 허무는 정계개편론까지 나왔다. 당을 근본적으로 개조하겠다는 뜻이다. 그냥 지나칠 얘기는 아니다. 그 주장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 때문에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태지만 국민의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민주당은 한창 불붙은 경선의 열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자칫 어느 주자 편을 든다는 오해를 살 우려 때문에 아직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다. 그러나 두 주자간의 이념공방은 민주당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된다. 어느 때든 당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당의 노선과 이념은 이쪽인데 그 당의 후보는 저쪽을 주장하고 있다면 ‘후보 따로 당 따로’ 식의 묘한 현상이 벌어진다. 그래서는 정당정치를 한다고 할 수 없다.

남찬순 논설위원 chans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