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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특종 사냥’ 어디든 가고 뭐든 한다

입력 | 2002-03-31 21:29:00


【휴고보스 잠바에 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선호하는 위크엔드팀 조인직 기자(고려대 영문과 95). 그의 사생활은 그대로 기사의 소재가 된다.

틈만 나면 서울 부산 대전 등지의 ‘물 좋은 곳’을 향해 떠나는 그의 별명은 ‘전국구’. 2000년 8월 그는 “분당의 무인 러브호텔에 가 보았는데 수중안마기와 거품물결 2인탕이 있더라”는 얘기를 전해듣고, ‘손님’ 자격으로 잠입 취재하다 룸에서 잠이 들었다. 그는 이 내용의 보도로 자판기식 러브호텔 난립에 경종을 울렸다.

한편 헬스(Health) 섹션에 생활 속 건강관리 및 질병 예방법을 쓰고 있는 사회2부 건강팀 이성주 기자(연세대 보건대학원 재학·고려대 철학과 84)는 매일 오전 7시 출근해 이튿날 오전 1시 퇴근한다.

취재원인 의사들이 권하는 건강수칙은 물론, 자신이 쓰는 기사와도 동떨어진 삶을 산다. 자칭 ‘일중독’이라는 그는 시간이 아까워 밥은 4분 만에 먹는다. 사흘에 한번꼴로 귀가를 포기하고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잔다. 아내는 e메일로 안부를 물어온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기사와 같은 삶’ 혹은 ‘기사와 다른 삶’. 동아일보 기자들의 보이지 않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위대한 모성(母性)

김진경 기자(서울대 영문과 82)는 영국 옥스퍼드대 연수에서 돌아온 이튿날인 2001년 9월 11일 밤 집에서 TV를 보다 뉴욕 테러 소식을 접했다. ‘회사로 가야하는데….’ 눈에 밟히는 어린 아들(10)의 손을 잡은 그는 입고 있던 검붉은색 꽃무늬 월남치마 차림으로 편집국에 달려왔다. 그는 아들에게 말했다. “휴게실에서 자고 있을래?”

99년 임신 6개월의 이진영 기자(고려대 영문과 87)는 한 공무원의 집무실을 찾았다. 공무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2.5㎝ 두께의 극비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특종감이다. 복사하기엔 시간이 없고, 절대로 안 줄 거고….’ 그는 서류를 임신복 속에 찔러넣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사무실을 나올 때 가슴이 두근거려 ‘태교에 나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를 스쳤어요.”(이 기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3월 20일 오후 7시, 사회1부 사건팀 기획회의가 휴대전화 벨소리로 자주 중단됐다. 휴대전화 폴더를 닫으며 이훈 기자(서울대 독문과 88)가 말했다.

“손에 피 묻히는 기사는 이런 점이 좋지 않단 말이야.”

‘손에 피 묻힌다’는 것은 남의 비위사실을 밝혀낸다는 뜻. 이 기자 팀은 이날 아침자 동아일보에 ‘98년 한국마사회 인력구조조정 당시 출신지와 정치성향을 따져 강제해직했다’는 사실을, 증거문건과 함께 특종보도했다. 비위 사실이 드러난 마사회 일부 관계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쏟아진 것.

사건팀장 이현두기자(고려대 사회학과 84).

“팩트가 틀렸거나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어?” “아녜요. 열받으니까 항의하는 거예요.”(이 훈 기자) “물러서지 마. 우린 올바른 기사로 싸운다.”(사건팀장)

3월 19일 오전 10시반 편집국 편집회의. 김용정 편집국장(고려대 법학과 62)이 진행하고 각 부(팀)장이 발제하는 이 자리에선 전체적인 편집방향과 지면배치가 결정된다.

“좌파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진보정당의 결성도 쉽지 않고…. 한국 좌파의 현주소를 짚겠습니다.”(오명철 문화부장·연세대 신방과 78)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에 대한 재계의 시각을 다루겠습니다.”(임채청 정치부장·서울대 법학과 76)

“각 후보가 시장경제와 기업발전에 대해 어떤 포지션과 철학을 보여왔는지 깊이 있게 들어가세요.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독자들을 무서워 해야 해요.”(배인준 부국장·서울대 철학과 70)

○피도 눈물도 없이

경제부 기자들은 스스로를 ‘특목고 학생’이라 부른다. 고승철 경제부장(서울대 경영학과 75)은 기사 함량을 평가해 매일 오전 ‘좋은 기사’를 선정, 공개한다. 3월 11일 내용.

‘흥창, 소액주주 제소 움직임’〓이병기. 후속 보충취재 단독.

‘직장인 24시’〓김승진. 내용이 재미있고 등장인물이 실명이어서 신뢰성 높음.

고 부장은 ‘좋은 기사’ 점수 등을 종합해 매월 말 A+, A0, A-, B+ …식으로 평가, 개별 통지한다. 이 점수는 인사고과의 근거가 된다. 경제부 한 기자가 2월 말 받은 성적표.

‘A0. 기업 M&A관련 특종이 돋보였음. 기자의 눈 2건 모두 주제와 착상이 좋았음. 문장을 더욱 간결하게. 비즈니스위크 등 외국잡지 읽고 국제감각 키우길.’

○3월 20일 오후 10시반

동아일보 기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①스포츠레저부 전창 기자(한국외국어대 불어과 85)〓삼성서울병원 영안실. 업무를 마치면 자주 찾는다. 체육계 유력인사들이 문상을 위해 찾는 곳이기 때문. 1999년 9월에도 그는 이곳에서 프로야구 이상훈 선수의 미국행 사실을 전해듣고 특종보도했다.

②사회2부 이호갑 기자(연세대 정외과 87)〓서울 강남의 한 횟집 화장실. 인천공항을 출입하는 이 기자는 술을 좋아하는 한 취재원과 친분을 맺기 위해 폭탄주를 마셨다. 그는 “소변이 급하다”며 화장실로 가 명함 뒷면에 취재원이 털어놓은 얘기를 메모했다.③문화부 강수진 기자(이화여대 사회교육과 88)〓서울 종로2가 영화 ‘익스페리먼트’ 일반시사회장. 취재수첩에 ‘신이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를 주었을까 하는 의문을 기사의 포인트로…’라고 메모했다.

③정치부 윤종구 기자(서울대 정치학과 86)〓아들(7)의 열이 40도라는 아내의 전화에 아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자동차 핸들을 꺾었다. 휴대전화로 한나라당 소장파의원들의 모임인 ‘미래연대’의 동태를 10분 단위로 체크했다.

④사회1부 김선우 기자(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지리학과 94)〓편집국에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이공계 학생 400여명에게 전화 중. 이공계 교육붕괴에 대한 설문조사.

⑤어문연구팀 여규병 차장(국민대 국사학과 78)〓‘오르가즘’을 ‘오르가슴’으로 바로잡고 있다. 한자표기, 지명 및 인명표기, 띄어쓰기, 오탈자 여부를 꼼꼼히 살핀다. 그는 식당에 가도 메뉴를 보고 “‘쭈꾸미’가 아니고 ‘주꾸미’인데…”라고 말한다.⑦편집부 박명식 부장(고려대 신문방송학과 78)〓“마감은 생명이다. 부친상을 당해도 마감시간엔 전화 못 받는다”며 야근 중에 쏟아져 들어오는 기사를 레이아웃하고 좋은 제목을 뽑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는 편집기자들을 채근 중.

○생활의 발견

경제부 이완배 기자(서울대 국제경제학과 90)는 서울 신도림동 집에서 출입처인 여의도 증권거래소까지 12㎞를 뛰어서 출근한다. 바둑담당 서정보 기자(서울대 동양사학과 86)는 서울 신천동(집)∼광화문(회사) 20㎞를 90㏄ 스쿠터로 출퇴근. 마라톤 풀코스를 5번 완주한 국제부 홍은택 기자(서울대 동양사학과 82)는 매일 아침 1.5㎞를 수영하거나 비탈길(7㎞)을 달려 오른다. 8월 강원 속초시에서 열릴 철인 3종경기에 참가 예정. 편집부 연제호 기자(한양대 경제학과 82)는 삽살개 풍산개 진돗개 발바리 등 모두 5마리 애완견과 함께 산책한다. 문화부 김형찬 기자(고려대 철학과 82·철학박사)는 매주 수요일 고려대 학부생 120명을 대상으로 응용윤리를 강의한다.위크엔드팀 조인직 기자(고려대 영문과 95)의 사생활은 그대로 기사 소재다. 서울 부산 대전 등지의 ‘물 좋은 곳’을 두루 돌아다닌다. 2000년 8월 그는 “무인 러브호텔에 가보니 수중안마기와 거품물결 2인탕이 있더라”는 얘기를 듣고 잠입 취재하다 룸에서 잠이 들었다. 그는 이 보도로 자판기식 러브호텔 난립에 경종을 울렸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