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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자와 이미지의 조화로운 만남 '파리 국제도서전'

입력 | 2002-03-29 17:24:00

파리 국제 도서전이 열린 엑스포 전시장 입구


참가했던 출판사들이 부산하게 짐을 꾸리는 가운데 27일 제 22회 파리 국제 도서전이 막을 내렸다. 한국측 대한출판문화협회도 작은 부스를 열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런던과 뉴욕 도서전 사이에 끼어 있음으로 인해 비록 영미권의 참여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번 도서전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 하루를 제외하고 모든 기간을 일반에게 공개함으로써 문화의 공급보다 수요 창출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단순히 도서 전시에 그치지 않고 책의 제작과정 변천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책에 대한 관심을 유발한 것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참가한 모든 출판사들이 신간 뿐 아니라 과거에 펴낸 책들을 전시 판매하여 저마다 자신의 역량을 뽐냈다. 저자의 강연 및 사인회, TV 라디오 등 언론 매체를 통한 문화 토론과 동화 구연 등 그야말로 입체적으로 문자 영상 음악의 조화로운 만남을 보여준 것은 프랑스의 문화적 역량을 가늠케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이른 바 ‘보 리브르(Beau Livre·아름다운 책)’이라는 범주의 약진이다. 동화 만화 등 아동 문학 시장의 비대화에 힘 입은 바 크긴 하겠지만 과거 미술서적이나 사진첩에만 국한됐던 ‘보 리브르’는 점차 그 영역을 넓혀 심지어는 단순 소박하기 짝이 없던 인문학 서적까지 넘보고 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출판사 갈리마르의 철학서적 표지가 단색을 벗어나 울긋불긋한 색채를 띠고 선 보인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파리의 대형서점 프낙에 전시된 철학서적 신간들. 표지가 베이지 등 단색 바탕에 제목과 저자만 쓰여 있던 과거 철학책보다 훨씬 화려해졌다

그러나 이를 문자에 대한 이미지의 보복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란한 이미지로 독자를 사로잡은 책들에서 얻은 이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놓인 인문학 서적의 출판에 투자되기 때문이다. 이를 문자와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고 그것을 통해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문학 작품 역시 독자에게 오랜 성찰을 요구하는 것보다 즉각적인 이미지화가 가능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고 해서 즉각적인 이미지화가 되지 않는, 다시 말해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작품들은 사멸할 것인가?

프랑스의 전통있는 출판사 쥘마의 편집장인 세르주 사프랑의 말은 문자와 영상 이미지의 만남을 통한 ‘보 리브르’와 인문학 서적의 상생처럼 대중 문학과 순수 문학의 상생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제는 문학과 책을 서로 다른 개념으로 파악해야 할 때다”라는 그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김윤진(金允珍·불문학박사)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지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