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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수백년 내전 딛고 이슬람-유대교 공존시대로

입력 | 2002-03-25 18:14:00


이스라엘과 이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도 종교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 종교간 반목으로 수백년에 걸쳐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섬에 위치한 인구 3만명의 소도시 다투 파글라스만큼은 철천지원수인 유대교와 이슬람교 간 공존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1일 전했다.

민다나오 섬은 필리핀을 점령한 가톨릭의 스페인과 기독교의 미국이 각각 400년과 50년 동안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을 소탕하려 했지만 실패한 곳. 최근에도 미국은 이슬람 과격세력을 뿌리뽑기 위해 700여명의 특수군을 파견했다.

다투 파글라스도 10여년 전만 해도 이슬람교도들이 농토를 버리고 총을 들어야 했던 전장. 그러나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중개상과 이스라엘의 농업 기술자, 국제적인 농산물회사인 치키타 브랜즈, 그리고 이슬람해방전선(MILF) 지도자들이 라 프루테라라는 기업을 함께 경영하는 번영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라 프루테라는 땅이 비옥한 이곳에서 바나나 농장을 일궈 지난해 1260만달러어치를 수출했고 360만달러의 순익을 올렸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슬람교도들이 총을 버리고 돌아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과 세계은행이 종교간 반목을 청산하고 테러의 온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모델로서 이 마을을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놀라운 반전은 91년 이 도시의 지도자인 이브라힘 파글라스가 피살된 형제의 살인자들을 용서하면서부터. 파글라스씨는 “보복의 악순환은 끝이 없다는 알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평화를 되찾은 마을에 90년대 중반 번영의 기회가 찾아왔다. 가톨릭교도가 사는 인근 다바오에서 바나나 농장을 경영하던 외국 투자자들이 농장을 이곳까지 확대하자고 한 것.

고비도 있었다. 투자자들이 기술력이 뛰어난 이스라엘의 관개 전문회사 플래스트로를 쓰도록 요구해 온 것.

고민에 빠진 파글라스씨는 97년 말 정글을 뚫고 이슬람해방전선의 최고지도자 하쉼 살라마트를 만났고 그로부터 이스라엘인들과 함께 일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이후 이스라엘 기술자들과 파글라스씨를 비롯한 이슬람교도들은 바나나 농장과 마을의 번영을 위해 함께 손을 잡았다. 이들은 지금도 서로를 ‘형제’라고 부른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