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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나이트라인’ 존폐 논란으로 본 美 방송뉴스

입력 | 2002-03-07 18:20:00


《‘돈이 우선이냐, 공익성이 우선이냐.’ 시청률 제고가 지상과제인 미국의 TV 방송에서 공익성에 바탕을 둔 뉴스 프로그램이 상업성을 앞세우는 오락 프로그램에 밀려 존폐 위기에 몰렸다. 최근 미국 3대 방송국의 하나인 ABC방송이 뉴스 프로그램을 오락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앵커들도 젊은층으로 대거 물갈이하면서 뉴스의 연성화(軟性化) 논란이 뜨겁게 불붙고 있다.》

▽발단〓논란의 발단은 ABC가 저녁 11시30분(동부시간)대의 황금시간에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을 폐지하고 이 자리에 경쟁사인 CBS방송의 연예 토크쇼 ‘레이트 쇼’를 편성하려고 한 데서 시작했다. ABC가 프로그램을 대체하려는 것은 시청률에서 앞서는 ‘레이트 쇼’가 광고 유치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

명사회자 데이비드 레터맨이 진행하는 ‘레이트 쇼’는 평균 시청자가 550만명으로 연간 2500만달러의 광고수입을 올리고 있다. 반면 테드 코펠이 22년째 진행하고 있는 ‘나이트라인’은 연간 수입이 1300만달러로 ‘레이트 쇼’의 절반에 머무르고 있다.

시청자의 평균 연령층도 ‘나이트라인’은 50대인 데 반해 ‘레이트 쇼’는 20∼40대여서 광고주들은 시청자들의 구매력이 높은 ‘레이트 쇼’를 선호하고 있다. ‘나이트라인’의 30초 광고는 3만달러인 반면 레이트 쇼 광고료는 4만∼5만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전문 앵커들의 소외〓ABC는 ‘나이트라인’ 폐지를 추진하면서 앵커 코플을 비롯한 뉴스 담당자들을 소외시켰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락 프로그램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여성 앵커 바버라 월터스가 진행해 온 뉴스 프로그램 ‘20/20’을 금요일 저녁시간대에서 밀어내고 이 자리에 드라마를 편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뉴스 담당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전쟁의 미군 영웅들을 소재로 한 TV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일요일 오전 뉴스 대담 프로그램인 ‘디스 위크’의 진행자도 50, 60대의 샘 도널드슨과 코키 로버츠에서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30대의 조지 스테파노폴로스와 클레어 시프먼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ABC는 2000년에도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인터뷰를 맡겨 뉴스팀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ABC와 모기업 디즈니의 경제적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3대 방송 중 ABC는 시청률에서 꼴찌를 기록하고 있으며 디즈니사도 만화영화와 테마파크 사업의 부진으로 1·4분기에만 3000만여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TV 뉴스 시대는 가는가〓미 언론은 대체로 이윤에 눈이 먼 디즈니사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TV에서 연예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이제 TV 뉴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하워드 로젠버그는 “그 같은 장르(TV 뉴스)는 점점 미국인들과 관련이 없는 것이 돼 가고 있다”며 “이는 마치 타이태닉 호가 가라앉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언론감시단체 ‘프로젝트 포 엑셀런스 인 저널리즘’의 칼 고트리브 부국장도 “TV 방송은 광고수입 감소와 케이블 뉴스 채널의 등장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다”면서 “경쟁사가 오락 프로그램으로 돈을 번다면 어느 방송국이라도 뉴스 프로그램을 폐지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6년된‘폭스뉴스’CNN눌렀다▼

미국의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사인 CNN, 폭스뉴스, MSNBC 3사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

6년 역사의 폭스뉴스 채널은 1월부터 22년 전통의 CNN을 주요 시간대 시청률에서 앞서고 있다.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주요 시간대별 하루 평균 시청자 수는 109만1000명. CNN은 가입 가구 수에서 폭스뉴스보다 900만가구가 더 많은데도 92만1000명이었다. MSNBC는 35만8000명. 폭스뉴스는 광고주가 선호하는 25∼54세 연령층을 상대로 한 시청률 조사에서도 이들 2개사를 앞질렀다.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는 5일 폭스뉴스의 강점을 ‘전문가 관점의 보도 성향’에서 찾았다. CNN이 세계 42곳에 있는 지사의 통신원을 통해 주요 뉴스에 대한 사실 전달에 치중한다면 폭스뉴스는 사안마다 전문가의 눈을 통해 볼 수 있게 한다는 것. 실제로 좌담 프로그램으로 폭스뉴스의 간판격인 ‘스페셜 리포트’는 CNN의 비슷한 프로그램보다 5배나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있다. 이에 대해 CNN의 최고경영자 월트 아이작슨은 “CNN은 사실 보도라는 정통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큰 사건 사고가 나면 시청자들은 CNN을 본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3개사가 똑같이 보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올해 연두교서 발표 때도 CNN과 MSNBC의 시청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폭스뉴스에 채널을 맞췄다.

3사의 경쟁은 스타 앵커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CNN은 최근 폭스뉴스에서 폴라 잔, ABC방송에서 아론 브라운을 데려왔고, 래리 킹과도 재계약을 했다. 폭스뉴스는 CNN에서 그레타 반 서스터렌을, MSNBC에서 제럴드 리베라를 데려왔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전문가 진단▼

지난 해 뉴욕의 9·11테러사건 때의 일이다. 놀랍게도 폭스 TV뉴스가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폭스 TV는 중하위층의 사람들을 목표로 삼는 오락성 짙은 채널이었기에 놀라움은 더했다. CNN에 뉴스 시청자를 지속적으로 내주고 있던 미국의 3대 네트워크의 반응은 놀라움을 지나 심각함으로까지 이어진다.

오래 전부터 네트워크는 뉴스에 관한 두 가지 방향을 놓고 고민을 해왔다. 뉴스를 가볍게 해서 재밌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중량감 있게 만들 것인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었다. 방송 시장의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네트워크가 택한 것은 재미를 주자는 쪽이었다. 가볍되 재미있는 뉴스 쪽으로 발빠르게 선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미국 네트워크 방송의 선택은 미국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점차 보수화되어 가며 힘의 우위를 믿는 사회 분위기는 공적 토론장을 밀쳐내고 있었다. 심각하게 토론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이 아닌 감정적 대립 혹은 힘의 사용 등에 미국 사회는 익숙해지고 있다. 텔레비전 내에서 심각한 토론의 장이 설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는 셈이다. 소수 민족을 빈정대며 인종차별적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 토크쇼에 뉴스, 시사 프로그램이 밀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미국 방송은 그 같은 사회 분위기에 책임을 전가할 만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 미국 사회의 보수화나 토론 공간의 감소에 텔레비전이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시청률 경쟁 등을 내세워 황무지 같은 내용을 쏟아낸 결과가 지금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준 만큼 돌려받고 있는 미국 방송은 우리로서는 타산지석임에 틀림없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