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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노명석씨…반세기 아코디언 인생

입력 | 2002-02-06 17:47:00


79세를 일기로 별세해 6일 벽제에서 화장된 원로 연주인 노명석(盧明奭)씨는 국내에서 아코디언 연주의 대중화를 이끈 주인공이었다.

또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재즈가수 박성연씨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 ‘야누스’에서 전자오르간 등을 연주하면서 “연주 음악이 활성화되는 길을 찾자”며 후배들을 채근하는 등 ‘영원한 연주인’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황금좌 악단에서 아코디언과 피아노로 연주 인생을 시작한 그는 63년 개국한 동아방송의 악단장 등을 지내면서 아코디언을 정착시켰다. 그는 아코디언을 자신의 몸처럼 아꼈다. 귀가하면 가장 먼저 악기를 닦았으며 인천 바닷가 공연을 마친 후에는 소금기를 빼야 한다며 밤새 손질했다고 가요인들이 전했다.

오랫동안 연주 활동을 함께 해온 엄토미씨(80)는 “그의 손길만 닿으면 모든 게 연주 음악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원로작사가 반야월씨도 “노 선생에게 아코디언은 늘 그의 몸의 일부였다”고 전했다. 고려대 수의학과를 졸업했으나 어릴 때부터 음악에 심취돼 50년대 초반 일본 음악 현장에서 이론과 실기를 쌓았다. 특히 화성악이나 재즈의 독특한 음 구성 이론에 해박해 당시 가수들의 창법과 곡을 단골로 지도(편곡)해 줬다. 동아방송 재직 시절 라디오 연속극 ‘낙조유정’(65년)의 주제가를 직접 작곡했으며 70년대 유행한 남양분유 CM송도 그의 작품.

대중음악계의 신사로 통했으며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동아방송에 함께 몸담았던 방송인 안평선씨는 “평생 역정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미남형의 동안에다 잔잔한 무대 매너로 여성 팬들이 특히 많았다”고 말했다.

허 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