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 참사 이후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정상의 행보가 어느 때보다 바쁘다. EU는 21일 테러 대책 협의를 위한 특별 정상회의를 갖는다. EU 정상이 역내 문제가 아닌 일로 모두 모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각기 미국을 방문해 테러 희생자에 조의를 표시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회담한다. 이들은 방미 전후 각각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도 만나 프랑스 영국 독일 등 ‘EU 3강’의 공동대응 방안 도출도 모색한다.
이와 별도로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 크리스 패튼 EU 집행위 대외관계 담당 집행위원과 하비에르 솔라나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등 EU 대표단도 곧 미국을 방문한다.
▼佛-英 정상 訪美 예정▼
유럽 지도자의 바쁜 행보에는 같은 서구 기독교 문명국으로서 미국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이 깔려 있다. 유럽 지역도 테러로부터 안전한 지대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성과가 있을지는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각국 처지가 다르기 때문.
외국 지도자로서는 테러 사건 이후 처음 미국을 방문하는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은 미국의 보복전쟁에 동참한다고 밝힐지 의문이다. 프랑스 국내 여론이 군사 지원에 부정적인데다 정부 관계자 사이에서도 ‘미국에 백지수표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 따라서 테러 응징이란 원칙에는 동의하되 군사행동 참여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 같다.
▼군사지원 찬반 엇갈려▼
EU내 미국의 최대 우방으로 꼽히는 영국의 블레어 총리와 슈뢰더 독일 총리는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최대한 뒷받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미국의 보복 전쟁 참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만치 않은 상황.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 다른 EU 국가는 ‘참전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시 이번 테러를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으나 구체적인 대미 군사지원 여부 및 수준은 18개 회원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여기에 유럽 언론까지 가세, 테러 사건의 전말과 주범이 규명되지 않은 터에 성급하게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EU가 모처럼 특별 정상회의까지 열지만 테러사태에 관한 단일 대응방안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로화 도입 같은 경제 문제와는 사안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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