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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소녀'에서 '아줌마'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입력 | 2001-08-31 13:27:00


내가 졌습니다! 항복합니다! 항복… 합니다, 주님.”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 주인공이 바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작가 공지영씨(39)라는 사실에 눈이 커진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의 전투적인 페미니스트이던 그가 왜 갑자기 신 앞에 ‘항복’을 선언하고 엎어져 버린 것일까. 그가 창작생활 13년 만에 처음 펴낸 기행 에세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김영사 펴냄)에 답이 있다. 이 책은 출간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6만 부를 돌파할 만큼 반응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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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반응이 ‘무소의 뿔처럼… ’만큼이나 빠르고 강해 저도 놀랐습니다. 종교에 관계 없이 책을 읽고 우셨다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대목에서 눈물이 났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소설을 쓸 때는 나름대로 독자가 이 대목에 울고 웃을 거라는 계산을 하는데 이 글을 쓸 때는 제 감정에 충실했어요.”

‘수도원 기행’은 여정을 따라 그림 같은 풍경을 소개하는 기행문이 아니다. 공지영씨의 표현대로 ‘마흔이 다 된 늙은 소녀’가 먼 길을 돌아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발견한 후 신 앞에 엎드려 고백하는 참회록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 20대 시절은 그만큼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다. 작가로서 명예를 얻었지만 자신을 향한 주위의 눈길이 견딜 수 없었다. 99년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이후 그는 3년 간 은둔생활을 했다. 여덟 살, 네 살의 두 아이와 씨름하며 평범한 주부로 사는 동안 ‘내가 글을 안 쓰고 온전하게 내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조금씩 삶에 지치던 지난 해 가을, 출판사에서 유럽의 수도원 기행을 제안 받고 신기한 우연에 놀랐다. 원래 가톨릭 신자인 그가 18년 동안 교회에 냉담했다가 다시 신을 찾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인 것이었다. 여행 후 자신을 비워낸 자리는 창작의욕으로 채워졌다. 올 겨울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일종의 추리소설로 날마다 ‘어떻게 죽일까’만 궁리한단다.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