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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원재/야속한 파업

입력 | 2001-06-13 18:34:00


올해로 입사 13년차인 대우전자 A차장의 봉급은 4년째 동결이다. 98년엔 외환위기 직후여서 임금인상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다. 회사가 99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뒤부터는 일자리를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심정이다.

자녀들은 쑥쑥 커가는데 수입은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재테크는 엄두도 못 낸다. 회사가 외자유치에 성공해 보란 듯이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A차장은 그래서 연봉 1억원이 넘는 항공기 조종사들이 60%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을 때 “부자들의 잔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입사이래 A차장의 봉급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은 거품이 한창이던 90년대 중반의 9.8%. 조종사들의 일터인 항공사가 작년에 462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올해에도 1000억원대의 적자에 허덕인다는 얘기를 듣고는 더더욱 입맛이 썼다.

그는 “이익을 많이 내는 회사라면 근로자가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적자투성이 기업에서 돈 문제로 파업까지 벌이는 것은 상도의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A차장은 무엇보다 이번 파업으로 엉뚱하게 대우전자가 피해를 볼까 걱정한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회사가 사활을 걸고 있는 해외매각의 길이 막히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는 것.

외자유치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의 B부장도 비슷한 심정이다. “하필 이런 때 파업을 하는가 싶어 야속한 마음까지 든다”고 말했다.

대우전자 현대건설 연합철강 등 회사 형편이 어려운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임금동결을 결의했거나 백지위임장을 회사측에 보냈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수출과 해외수주에 미칠 타격을 걱정해 파업을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파업참가 노조원들은 임금이든 근로조건이든 전리품을 챙길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회사 근로자들로부터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파업이라면 도덕적으로 실패한 것이 아닐까.

박원재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