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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파업이 능사'인가

입력 | 2001-06-13 18:29:00


▼투쟁만이 살길?▼

민노총 일각에서도 파업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강경파의 목소리에 묻힌 것으로 전해졌다. 몇 년 전 수해 때 노동계가 총파업을 1주일 연기, 공감을 얻었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민노총의 연대 파업 주도세력은 단병호 위원장과 공공연맹의 양경규 위원장 및 양한웅 수석부위원장 라인. 올 위원장 선거에서 급진파와 연대해 지도부를 장악한 이들은 합리적 온건노선을 취하고 있는 ‘국민파’와 달리 ‘투쟁을 통해 조직이 단련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정리해고와 대량실업 사태를 겪으면서 노동계에서 좌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사 노조의 파업 및 타결 시기를 조정하고 있는 것도 공공연맹 등 상급단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부원장은 “강경파가 타협노선을 걸으면 책임론이 제기될 것이므로 운신의 폭이 좁다”고 분석했다. 온건파는 대량 정리해고와 대우자동차 경찰력 투입 등으로 인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노총은 근로조건 개선과 함께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 등 노조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주장도 펴고 있다. 미사일방어(MD)체제 반대 성명에 ‘김대중 정권 퇴진’ 구호까지 내걸고 있다.

민노총의 이 같은 정치투쟁은 ‘구조조정을 하는 정권 대 노동계’라는 전선을 형성해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권 퇴진은 파업으로 정부를 무너뜨린다는 ‘생디칼리슴’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급진적인 논리다.

▼시대착오 노동운동▼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전략적’이라기보다 ‘우발적’이다.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과격 투쟁으로 치닫는 것은 전략 부재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직 논리에 묶여 대화와 교섭을 거부하고 파업이라는 정점을 거치고서야 해결의 길을 찾는다.

그러나 파업이 대외 신인도 추락 등 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 최근 대우자동차 사태에서 보듯이 대다수 직원이 원하는 제너럴모터스(GM)의 인수 합병에 대해 일부 노조원이 반대투쟁하는 식의 노동운동은 결국 공멸로 이끈다는 위기의식이 사회에 퍼져 있다. ‘윈-윈’전략을 노조도 구사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계 일부에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지하철 노조가 무분규 선언을 하는 등 여러 노동 운동가들이 교섭중심의 ‘제3의 길’을 찾고 있다.

제3의 길은 다름 아닌 노동자 본연의 이익에 충실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치투쟁이나 파업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의 크기에 연연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70년대식 노동운동이 아니라 합리적인 협상과 논리로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노동자와 노조의 지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오랜 전통을 지닌 서구의 노동운동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한양대 예종석 교수(경영학)는 “노동운동을 통해 근로자의 몫이 커져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보면 근로자에게도 도움이 안되고 국가 경제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게임을 하고 있다”면서 “노조 지도부가 각성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노조는 어떻게▼

서구 노조들은 ‘정치 투쟁’보다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의 경우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던 노조는 구조조정에 맞서다 마거릿 대처 정권의 확고한 대처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와 북유럽권은 노조가 구조조정의 파고를 인정하면서 정리해고 최소화 또는 비정규직 보호, 실업자 보호 대책 등을 마련하는 데 참여해 국가 경제의 한 축으로 건재하고 있다.

미국은 ‘갈등 대립’에서 ‘화해 협력’으로 전환, 80년대 이후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강성 노조로 유명한 프랑스도 지난 20년간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노조가 협상이 더 생산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판단, 98년에 노사 합의로 ‘노동시간 단축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