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옴부즈맨칼럼]최은순/'신용불량자 기록삭제'기사 시의적절

입력 | 2001-05-18 18:27:00


얼마 전 어느 주간지에서 미국 중산층 가정의 돈 씀씀이를 그린 현지보고를 접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이 10달러를 쓰면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이유를 분석한 것이었다. 사실 자린고비 같은 씀씀이는 일본인도 예외가 아닌데, 일본인이나 미국인의 이런 소비행태의 이면에 있는 무언가가 늘 궁금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현지보고의 ‘할부인생’이란 표현은 참으로 실감나는 것이었다. 집도 장기로 대출받아 마련하고 자동차도 할부로 구입하므로 주택 융자금과 자동차 할부금 및 기타 필수 지출비를 빼면 남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중산층 가구의 월 순수입을 4500달러 정도로 잡는다 해도 경상지출을 빼면 월 약 40달러 정도만 남는다. 그러니 모자라는 돈 대신 신용카드로 살다보면 할부금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할부인생’보다는 ‘현대판 채무노예’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분별한 카드 발급에 대한 책임을 신용카드사에 물리자는 법적 논의가 일본에서는 이미 7∼8년 전에 시작되었다. 카드사의 의무 불이행이나 신용측정에 있어서의 과실이 인정되면 카드사용자의 대금지급 책임을 경감시키자는 논의이다. 이러한 법적 논의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소비자)이 갖는 한계를 전제로 한 것으로 은행이나 카드사의 행위를 법적으로나마 규율하여 개인을 구제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동아일보 12일자 A3면 ‘신용불량자 기록 강제삭제 물의’는 한국판 ‘할부인생’의 결과인 신용불량의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다루었다. 다만, 그 내용은 정부의 신용불량 전과기록 삭제 정책에 대한 금융기관의 반발을 다룬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이어 신용불량 전과기록 삭제가 여당의 민심잡기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17일자 A3면 ‘쏟아지는 여 정책, 효율성-선심 논란’에서 지적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정부와 카드사와의 대결 또는 카드사의 반발로 다룬 점은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아쉽다. 제대로 된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정부규제의 근본적 원칙과 방향을 짚어 주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이밖에도 정부규제의 원칙과 방향성이라는 같은 맥락에서 12일부터 18일까지 동아일보가 가장 중요 현안 중 하나로 다룬 것은 ‘30대그룹 출자총액제한’에 관한 것이었다. 이 문제를 다룬 기사와 사설 등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재벌과 정부 혹은 여당의 대결국면을 지나치게 앞세운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12일자 A7면 ‘토요쟁점토론’으로 다룬 ‘30대그룹 출자총액제한’에 대한 찬반 의견과 15일자 A7면 표학길 교수의 경제시평 ‘대기업정책 어디로 가나’는 차분하면서도 의미있는 분석이었다. 이 논의의 본질은 구조조정의 명암을 정치쟁점화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경제의 구조변화를 위한 철저한 재계의 반성에 있으며 정부 스스로도 구조조정의 원칙을 무너뜨려 온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최은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