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이규민/인디언 서머

입력 | 2001-05-08 18:42:00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차가운 계절이 발 밑에 왔음을 노래하는 시인들처럼 경제전문가들은 간혹 엉뚱한 데서 체감경기 지표를 읽어 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대도시 택시 운전기사의 친절도가 올라가면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는데 이 분석은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많은 택시기사들은 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손님이 귀하던 시절에 가장 훌륭한 서비스를 승객에게 제공했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뉴욕 월가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경기의 흐름을 읽고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맨해튼에서 생수판매량이 줄고 정수기 판매고가 높아지면 불황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이며 나이키 운동화 판매량이 줄면 파티 후의 다이어트가 필요 없게 된 상황, 즉 불황이 이미 깊숙이 와 있다는 분석 등이 그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도 비슷한 사례들을 소개했는데 예를 들어 투자전문사인 골드만삭스가 저녁 8시 이후 퇴근자에게 주던 택시비를 가까운 전철역까지의 요금만 지급할 때 경기는 바닥이라고 하던가.

▷요즘 발표되고 있는 각종 경기관련 지표들이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민간경제연구소조차 최악의 상황을 예고했던 1·4분기 경제가 어찌된 일인지 예상보다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지수가 이 달에 작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7일 전경련의 발표도 그렇고 시장의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전망지수가 1월 이후 계속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는 것도 기이하다. 승용차에서 의류에 이르기까지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니 지금까지 경제를 비관적으로 본 근거들이 무색해진 느낌이다.

▷과연 그럴까. 추위가 깊어지는 계절에 한두 주일 반짝 더워지는 이상기후 ‘인디언 서머’처럼 우리경제가 혹 불황의 질곡으로 향하는 길에 잠깐 분홍빛을 띄워주는 것은 아닐까. 환란 이후 얻은 소심증에서 비롯된 기우라면 좋겠지만 우리 경제의 수출의존적 구조를 고려할 때 미국 일본의 경기 상황이 영 마음에 걸린다. 벌써 맨해튼의 생수소비가 줄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직 마음을 놓을 때는 분명 아닌 것 같다.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