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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월드]모스크바 거주등록제도 논란

입력 | 2001-04-06 16:17:00


러시아의 최고 명문대인 모스크바대에서 영어를 전공하는 여대생 나스탸(22)는 6월 졸업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영어 외에 스페인어 등 4개 국어에도 능통해 졸업하면 외국계 기업에 취직해서 모스크바에 사는 게 소망이지만 '프로피스카'(모스크바 영구 거주등록증, 일종의 모스크바 시민권)가 없어 졸업과 동시에 고향인 러시아 동부 랴잔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안 50대 이혼남인 한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시민)가 결혼하자고 조르고 있어 눈 딱 감고 결혼해서 프로피스카만 얻은 뒤 이혼해 버릴까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미모와 지성을 갖춘 젊은 여대생이 모스크바에 살기 위해 위장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모스크비치가 되는 길은 어렵기만 하다. 공산체제가 끝난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수도 모스크바에만 외부인의 유입을 억제하기 위한 거주등록제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사람이 프로피스카를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방법은 모스크바 시민과 결혼하거나 모스크바에 부동산을 사는 일종의 '투자이민'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위장결혼 등의 방법을 이용해 프로피스카를 받게해 주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브로커를 통해 프로피스카를 가지려면 2000달러 이상은 줘야 한다. 러시아인의 한달 평균 임금이 85달러 정도이니 그 비용이 어느정도 비싼지 알 수 있다. 프로피스카가 없으면 모스크바에서 취직은 물론 교육과 의료혜택도 못받고 불법체류자로 계속 숨어살아야 한다.

그런데 모스크바 거주등록제는 사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러시아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미 1996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까지 받은 바 있다. 크렘린 당국이 이를 근거로 최근 모스크바 시 정부에 "연내에 이 제도를 없애라"고 지시했고, 국내외의 여러 인권단체도 오래 전부터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비난해 왔으나 시 정부가 말을 듣질 않아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에서 주 지사와 은행장을 지내다 96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중앙 정계로 진출한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와 세르게이 키리옌코 전 총리가 거주등록증을 받지 못해 한동안 불법체류자 상태로 지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키리예콘 전 총리의 부인은 시내에서 경찰의 검문에 걸리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시 정부는 "이 제도를 없애면 지방에서의 인구 유입이 크게 늘어 범죄가 증가하고 주택 교통 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론 황제 처럼 군림하는 유리 루슈코프 시장의 위세가 이 제도의 유지에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루슈코프 시장은 정부는 물론 지방 사람들로부터도 큰 불만을 사고 있다. 하지만 모스크바 시민들로부터는 90%가 넘는 지지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법질서 회복을 내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는 모스크바 시의 콧대를 꺽어놓고야 말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는 만큼 어떻게 결말이 날지 지켜볼 일이다.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