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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뷔시절]김혜리, 선배들 잔심부름 자청하며 수업

입력 | 2001-03-07 18:42:00


대학에 떨어지고 유학을 준비하던 88년,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 나갔다가 선으로 뽑혔다. 두 달 뒤 KBS에서 연락이 왔다. 생방송 의 MC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방송 경험이 전무했던 열아홉살의 나는 너무 떨렸다. 누군가 청심환을 먹으면 긴장이 덜하다고 해 청심환 두 알을 방송 직전 씹어먹었다. 하지만 첫 방송을 어떻게 마쳤는지는 기억에 없다. 약을 너무 많이 먹고 긴장한 탓인지 몽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데뷔 후 나는 이름을 바꿔야 했다. 내 본명은 순 한글 이름인 ‘김해리’(‘해가 떠있는 마을’이라는 뜻)다. 하지만 데뷔 초기부터 ‘김혜리’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아예 예명을 ‘혜리’로 굳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92년 방영된 KBS 2TV 미니시리즈 이다. 햇병아리 연기자가 자살 여행을 결심한 30대 후반의 여인을 연기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정말이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나면서 배웠다. 더구나 당시에는 의상 준비까지 혼자 해결해야 했던 터라 더 힘들었다. 그렇게 고생한 덕분인지 그 해 KBS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보람도 있었다.

신인시절 나는 뭐든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선배 연기자들의 잔심부름을 자청하며 쫓아다녔다. 당시 내 주머니에는 항상 선배들에게 커피를 접대하기 위한 동전 20여개가 짤랑거렸다.

지금도 매년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들어서는 후배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 미스코리아 후배들을 볼 때면 다들 ‘기본기’가 출중해서인지, 선배들에게 혼나가면서 애써서 배우려는 ‘프로정신’이 부족해 보여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