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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휴지조각']대우車에만 4조 '물쓰듯'

입력 | 2000-12-18 19:00:00


“98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들어가기 전에 아예 정리를 해버리거나 제대로 지원을 했더라면 공적자금 투입은 훨씬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지난달 동아건설이 최종 부도처리되었을 당시 동아건설 주거래은행 관계자가 내뱉은 아쉬움이다.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기관이 정부의 방치 아래 워크아웃 등 기업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이 공적자금을 낭비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것.

▽공적자금 어디로 사라졌나〓한빛은행의 경우 지난해 10월 예금보험공사로부터 3조2000억여원을 출자받았다. 한빛은행은 이 돈으로 부실기업의 부도 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으로 대부분을 썼다. 이중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 계열사 부분이 약 2조2000억원에 이른다.

98년 3조3000억원을 지원받은 서울은행도 기아 한보의 부도에 이어 동아건설 우방 미주 등 워크아웃 기업마저 부도처리되면서 공적자금을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8조3000억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이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 직접적인 원인은 기업 부실 때문이지만 이것이 불가피한 것이었느냐는 점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능력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기업구조조정을 완전히 맡기고 정부가 관리에 소홀한 것이 공적자금을 모두 날려버린 화근이 됐다고 지적한다.

실제 98년 6월 워크아웃 개시 이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법정관리로 전락한 대우차 동아건설 우방 등 5개 업체에 들어간 신규자금만 2조166억원에 달한다.향영리스크컨설팅의 이정조 사장은 “채권금융기관이 살리겠다는 명백한 의지나 전략도 없었고 그렇다고 초기에 청산처리를 하지도 못하고 그저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끌고 갔기 때문에 기업부실이 금융기관에 그대로 전가됐다”고 분석했다.특히

공적자금을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고 쓴 부실 은행의 책임도 크다. 단적인 예로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은행들이 조달 코스트인 연 5∼7%보다 낮은 금리로 직원에게 장기대출해 줘 역마진을 자초한 점. 또 워크아웃 기업주의 부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동아건설의 경우 대선 비자금으로 자금이 나간 사실조차 채권단은 알지 못했다.

▽누구 책임인가〓이같은 혈세 낭비에도 불구하고 정부 부처 어디에서도 ‘책임론’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은 없는 실정이다. 이번 전액감자로 쌈짓돈을 날려버린 소액주주들은 차치하고라도 국책 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최근 보고서에서 “구조조정의 실패와 공적자금 추가투입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려야 한다”는 논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책임 소재를 가리자면 우선 98년 이후 1, 2차 공적자금 149조6000억원을 조성, 집행해온 이규성(李揆成) 강봉균(康奉均) 이헌재(李憲宰) 진념(陳稔) 등 전현직 재경부장관과 이헌재 이용근(李容根) 이근영(李瑾榮) 등 전현직 금감위장이 1차 책임자로 거론된다.

또 핵심적인 정책 결정에 관여했던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금감위 전 구조조정기획단 고위 관계자와 심의관 등도 조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금감위 관계자는 “물론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공무원에 대해 정책결과에 무한 책임을 묻기는 곤란하다”며 “만약 무한 책임을 묻는다면 어느 공무원이 소신껏 일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