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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이념논쟁]북 포용정책 일방적 양보 논란 불러

입력 | 2000-12-12 18:56:00


대결관계의 상대방을 대하는 데 두 방식이 있다. 하나는 ‘티트 포 태트(tit for tat)’ 방식으로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방법으로 나도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다. 철저한 상호주의 또는 기계적 상호보복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선제적 양보’ 방식으로 우세한 쪽이 먼저 양보함으로써, 즉 ‘양보 이니셔티브’를 취함으로써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안심시켜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선제적 양보’ 방식에 속한다고 하겠다. 국력이 우세한 남쪽이 먼저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줄 것은 줌으로써 심각한 위기에 몰려 있는 북한 지도부의 불안심리를 완화시켜 줘 남쪽에 대해 어느 정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북에 대한 ‘선제적 양보’가 많이 취해져 비료와 양곡 등은 물론 ‘금강산관광프로그램’ 아래 적지 않은 미화가 들어갔으며,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여러 예술단에 국제수준으로 볼 때도 높은 공연료가 지불됐다. 그뿐만 아니라 남쪽 양민들을 살상했던 무장간첩 출신도 포함된 북쪽의 비전향장기수들을 북쪽의 요구에 맞춰 돌려보내기도 했다.

진보적 입장은 물론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그 조치들은 협상이론이 말하는 ‘그리트(GRIT) 효과’, 즉 ‘단계적 긴장완화 효과’를 발생시켜 남북 사이의 화해를 촉진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적 입장은 시간이 꽤 지나도록 북쪽이 상응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오히려 남쪽에 ‘오만무례’하게 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처음부터 얕보이는 자세로 협상을 시작해 북쪽이 남북관계를 좌우하고, 때로는 남쪽에 주저 없이 모욕을 주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 가운데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는 부분은 납북어부와 국군포로를 돌아오게 하라는 요구, 이제는 남한경제의 어려움을 고려해 북에 대한 ‘퍼주기식’ 일방적 시혜를 줄이라는 요구, 그리고 북의 비위를 건드릴까 눈치를 보기보다는 북에 대해 할 말은 당당히 하라는 요구이다.

상호주의와 더불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또하나의 대상은 속도문제이다.

진보적 입장에서는 현재 남북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당연하며 오히려 너무 늦다. 유럽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에 냉전이 깨어져 지난날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 사이에서 화해와 협력이 굳건히 자리잡았음을 고려할 때 한반도 상황은 세계사의 흐름에 비춰 ‘지각생’인 만큼 최소한 현재 속도가 유지되거나 아니면 더 빨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 입장에서는 너무 빠르게 일이 벌어져 혼란스럽다. 수십 년의 불신을 씻고 믿음을 쌓으려면, 그리하여 국민 사이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려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단계적으로 밟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점과 관련해 북쪽도 속도조절론을 들고나온 것이 흥미롭다. 북쪽 역시 담당인력의 부족, 내부적 소화력의 한계로 현재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아마 그래서 북은 최근에 자꾸 시비를 걸어오는 듯하다.

새해부터는 비록 기계적 상호주의는 아니라고 해도 유연한 상호주의가 지켜지고 남과 북이 서로 숨차 하지 않는 수준에서, 그러나 꾸준히, 관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