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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독자의 밤]그녀는 갔지만 '혼불'은 타오른다

입력 | 2000-12-11 19:29:00


‘혼불’ 사랑에는 남녀와 노소가 없었다. 10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관 4층에서는 영하의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혼불’의 팬을 자처한 저명 인사와 독자 등 2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인 ‘혼불 독자의 밤’ 이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추모하는 자리로 그의 2주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장 강원룡 목사)이 주최한 이날 모임에는 강원룡목사와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부인인 탤런트 최명길씨, TV드라마 ‘은실이’의 작가인 이금림씨, 김영환 민주당 의원 등 저명 인사 50여명이외에 손자를 안은 할머니, 작가 지망생인 대학생, 군 장병, 책가방을 멘 고등학생 등 다양한 독자들이 참석했다.

김한길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혼불’의 무대인 전북 남원 매안마을을 ‘혼불공원’으로 만들 것”이라면서 ‘혼불’ 후원을 약속했다. ‘혼불’을 출판한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은 “‘혼불’을 읽은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민족혼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혼불’ 독후감 공모행사에서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돼 이날 상을 받은 주부 김수연(31·경기 성남시 분당구)씨는 “시어머님이 월간 ‘신동아’에 연재된 ‘혼불’을 보시고 권유해 읽게 됐다”면서 “책을 읽고 난 뒤 종손의 아내라는 같은 운명을 지닌 시어머님과의 ‘거리’가 한결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추모의 글’을 낭독한 김근호(서울대 국어교육과4)씨는 “걸출하다는 세계 문학을 모두 접한다 해도 ‘혼불’만큼 귀중한 문학의 파랑새를 만나기 힘들다”고 말했고, 소설가 지망생인 조혜정(원광대 국문과1)씨는 “문학도로서 ‘혼불’에서 찾은 아름다운 모국어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명희가 남기고 간 문학의 불씨가 널리 번져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목소리였다.

세상을 뜨기 전 최씨는 1997년 7월 발족된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구슬 목걸이 속에 보이지 않는 실의 존재처럼, 나는 사라져도 ‘혼불’은 독자 가슴에 남기를 바랍니다.” 밀란 쿤데라 처럼 ‘소설은 소설가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그 역시 직감한 듯하다.

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