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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포럼]김성수/이웃돕기는 나를 돕는 일

입력 | 2000-12-07 18:30:00


맹자(孟子)에 “성곽을 지키는 데 무기의 많고 적음이 지형의 이로움만 못하고, 지형의 유리함이 성을 지키는 사람의 인화(人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항상 분주하고 무언가에 쫓기며 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다그치고 몰아세우는 것일까? 난마처럼 얽혀있는 나라사정을 볼 때마다 무언가를 잃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최근 3년간 우리는 미증유의 사회적 해체와 위기를 경험했다. 국제통화기금의 이니셜인 ‘IMF’라는 어려운 말을 어린아이도 알 정도니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생각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3년 동안 계층간 지역간 빈부격차에 의한 괴리감과 피해의식으로 말미암아 공동체의식의 붕괴 조짐마저 일고 있는 것이 큰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중산계층이 몰락하고 20%의 상류층이 80%의 하류층 위에 군림하는 이른바 20 대 80의 사회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동체의식 실종 막아야▼

공동체의식의 실종은 곧 사회불안으로 이어져 정상적이고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저해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정부의 사회복지기반 확충과 민간 모금활동의 활성화를 도모해 계층간 위화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21세기 선진국 진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 중 최우선으로 ‘시민의식의 선진화’가 꼽혔다. 수치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을 위한 배려와 관용, 소외계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시민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서둘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지만 사회보장비 대비 국내총생산(GDP)의 비율은 6.8%(97년)로 이는 가입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의 국민이 이웃돕기와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많은 시민이 모금단체에 대한 불신과 기부나 자선을 부담으로만 생각해 적극적인 참여를 망설이고 있다. 더구나 모금이나 자원봉사에 너무 숭고한 의미를 두고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미국 가정의 70%가 한 곳 이상에 꾸준히 생활 속에서 기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부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IMF체제에서 기업들이 사용한 접대비가 3년간 수조원이 넘는 데 비해, 기부금은 대폭 줄어든 것은 아직도 기부금을 하나의 비용으로만 생각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소외계층이 사회에 재편입되고 계층간 위화감이 줄어들면 자연히 생산성이 높아지고, 명랑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돼 질적으로 행복한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자선(慈善)’을 영어로 ‘Philanthropy’라고 하는데 이는 ‘사랑’이라는 ‘Phil’과 ‘인간’이라는 의미의 ‘anthropy’가 합쳐진 말이다. 즉 자선행위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나와 가족만을, 우리 집단만을, 우리 지역만을 위한 사회는 필히 쉽게 무너지고 그 속도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사는 맛 나는 사회'되기를▼

불우이웃돕기캠페인을 펼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인 ‘사랑의 열매’는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상징한다. 빨간색은 사랑의 마음을, 열매줄기는 화합의 정신을 의미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바로 우리 가족과 나를 돕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웃은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분단 50년 만에 남북이 만나 이산가족의 한을 풀고,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등 새 천년은 어느 해보다 벅차고 역동적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우리 주위에는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현실을 단칼에 베어 해결하려는 성급함보다는 늦더라도 차근차근 실타래를 풀어 가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여유와 사랑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더불어 사는 희망이 넘치는 사회’,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사회’, ‘나눔의 손길이 퍼져가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김성수(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성공회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