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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이산상봉]평양 상봉 '두가족' 표정

입력 | 2000-12-03 19:26:00


▼납북 아들 만난 김삼례씨▼

“건강한 모양이니 마음이 놓여. 새 며느리와 손자까지 나와서 정신이 없었어. 시간이 짧은데다 우느라고 이야기를 많이 못한 게 얼마나 아쉬운지….”

동진호 갑판장으로 일하다 87년 납북된 아들 강희근씨(49)를 만난 김삼례씨(73)는 “그럼. 너무 좋았지”라면서도 짧은 일정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납북자들의 소식에 대해서는 “들은 게 없어 할 말이 없다”며 “그저 기대를 갖고 좋은 소식 있기를 기다리자”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의 상봉을 지켜본 납북자 가족들 가운데에는 ‘우리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송환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다.

납북자가족협의회 대표 최우영씨(30·여)는 “김할머니의 상봉은 납북자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지만 이 문제가 별도의 문제로 다뤄지지 않고 이산가족 문제에 포함된 것은 상당히 혼란스럽다”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최씨는 “납북자 문제는 이산가족과는 성격이 다르고 ‘상봉’보다 ‘송환’을 추진해야 할 사항”이라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따로 취급해 송환이 이뤄졌듯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비전향 장기수와 달리 강씨가 “납북이 아니라 자유의사로 북에 상주하기를 희망했다”고 밝힌 것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다른 납북자 박동순씨의 부인 임희순씨(65)는 “김할머니가 아들을 만나는 장면이 TV에 나와 너무 부러웠다”면서도 “김할머니의 아들이 북에서 결혼해 자녀도 두고 원해서 그쪽에 있는 것이라고 하니 남한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라며 불안함을 표시했다.

sarafina@donga.com

▼1차방북 양보 우원형씨▼

“우리 형제가 5남매인줄 알았는데 9남매가 됐더라고….”

1차 방북단에 포함됐으나 109세 노모가 숨진 장이윤씨에게 기회를 양보했던 우원형(禹元亨·67·경기 고양시 일산구 일산3동)씨는 이번 방북에서 자신의 월남 이후 4명의 동생이 더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씨는 상봉 첫날인 지난달 30일 고려호텔에서 훈장 17개를 자랑스레 달고 나온 동생 인형씨(61)와 옥희씨(64·여)를 만나 얼굴을 부비며 형제의 정을 나눴다.

9남매가 된 형제들과 그 자손들 이야기를 듣고 이름 생일 등 족보에 기록할 내용을 적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분 일초가 아까웠지만 번성한 자손들 이름 적는 게 마냥 신이 났다. 고향 개성에서 서울 간다는 고모에게 계란 한 줄을 전해 주러 집을 나선 게 50년 생이별을 낳았던 기억도 새롭게 떠올랐다.

둘째날 상봉에서도 전날 다 적지 못한 북한의 손자 14명의 이름과 나이를 정리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인형씨로부터 “형이 죽은 줄 알고 내가 장남 노릇을 해 왔는데 이젠 그만 해야겠다”는 농담을 듣고는 50년전 개구쟁이 동생 얼굴을 자연스레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50년 세월과 1차 상봉 양보 이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꿈은 이뤄졌지만 이젠 통일이 되지 않으면 죽기 전에 다시는 동생들 얼굴을 볼 수 없겠구나.”

우씨의 뺨 위에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