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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동심으로의 여행, 파파야님께

입력 | 2000-11-27 14:36:00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1시간 정도 KMTV와 M.NET을 번갈아 틀며 뮤직비디오를 봅니다. 영어가 섞이고 잘 들리지도 않는 랩을 따라하기 위해 '에브리바디'처럼 가사 자막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찾다보면, 23개월된 딸아이가 슬그머니 제 팔을 잡아끌며 애원합니다. "아잉!"

파파야의 '내 얘길 들어봐'를 보여달라는 뜻이지요. 어떨 때는 노골적으로 "파파야! 파파야!"를 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파야가 24시간 내내 뮤직채널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종종 다른 여성댄스그룹(베이비복스, 티티마 등등)을 보여주며 딸아이의 동정을 살핍니다. 딸아이는 단숨에 저의 농간을 알아차리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이스크림을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은근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딸아이는 왜 많은 여가수들 중에서 유독 파파야만 좋아하는 것일까?

아내는 아기들이 긴 머리 소녀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여성 댄스가수들도 대부분 긴 머리 아닌가요? 파파야의 CD를 산 후에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파파야가 추구하는 세계, 그것은 바로 동화(童畵 : 동화(童話)를 춤과 음악으로 보여준다는 뜻일까요? 그림이든 이야기든 동심을 택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였던 것이죠. 제 눈에는 약간 유치하게 보이는 몸짓과 표정들을, 딸아이는 요즈음 한창 넘겨보고 있는 동화책의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파파야의 노래들은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에 앙증맞은 춤이 어울려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내 애길 들어봐'의 "아잉!"에 열광했던 딸아이는 후속곡인 'SMILE SMILE'에서도 후렴구인 '멀리 아주 멀리 / 높이 아주 높이 /날아 날아 올라'를 부정확한 발음으로 따라하며 더욱 신나게 온몸을 흔들어댑니다. 아내와 저는 딸아이의 재롱을 보며 손뼉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3분 55초 동안의 짧은 행복이지요.

수많은 댄스그룹이 명멸하는 가요계에서 파파야의 성공은 '동화'라는 차별화된 컨셉을 택한 기획사의 전략에 있습니다. 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지치고 위안이 필요한 이들에게 동심으로의 여행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일 수도 있습니다. 방긋방긋 웃어대는 다섯 공주(BLUE 강경아, PINK 황윤미, ORANGE 조혜경, YELLOW 주연정, GREEN 강세정)의 춤과 노래를 듣고 보면서 잠시 세상 시름 잊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출판계에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유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조조정이다 금융위기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딸아이가 파파야에 열광하는 것은 기쁨 그 자체이지만, 제 또래 직장인들의 파파야에 대한 관심은 슬픔이나 불안 분노를 예쁘게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량음료같은 파파야의 세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파파야도 그 노래를 듣는 시청자도 너무나 잘 알지요. 노래가 끝나면 다시 고단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파파야가 보여주는 동화들은 철저하게 닫힌 동화란 것을 지적해두고 싶군요. 동심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아름답고 순수한 세계가 현실과 부딪혀 흔들리는 부분까지 보여주는 헤르만 헷세의 '크눌프'와 같은 열린 동화가 있는 반면에,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로부터 부웅 떠올라 자기완결적인 구조를 갖는 닫힌 동화도 있는 것입니다. 파파야의 1집은 닫혀 있지만, 저는 파파야의 춤추는 다섯 공주가 얼마나 이 경쟁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춤과 웃음을 연습했는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고는 이제 스무 살에 다다른 숙녀들에게서 제 딸아이처럼 자연스러운 어리광이 나오지 않겠지요.

파파야의 'SMILE SMILE'이 끝날 즈음, 저는 여전히 몸을 흔들며 까르르 웃어대는 딸아이와 그 뒤에서 손뼉을 치는 아내의 행복한 표정을 훔쳐봅니다. 그리고 문득 이 안에 갇혔다는 생각과 함께 이성복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세상에는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다 이런 세상에, 어쩌자고, 이럴 수가 세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내가 보는 들판에는 깨알만한 작은 흰 꽃들이 잠들었는지, 보채는지 널브러져 있다 그 길을 나는 보이지 않는 아내와 아이들과 더불어 걷고 있다 언제는 혼자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깊이 묶여 떨어질 수가 없구나 이런 세상에, 어쩌자고, 세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이성복, '높은 나무 흰 꽃들은 등(燈)을 세우고 22'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