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커밍아웃, 홍석천님께

입력 | 2000-10-27 15:27:00


10월 초부터 '즐겨찾기'에 추가시켜놓았던 홍석천 커밍아웃 공식홈페이지(www.comingout2000.org)를 오늘에야 비로소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홍석천님이 커밍아웃을 한 직후부터 님에 관한 글을 준비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지요. 이런저런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들이 생긴 탓도 있지만 '동성애'란 세 글자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머뭇거리게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 질끈 감고 다른 아이돌스타로 넘어갈까 하다가, 끝내 홍석천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지지서명도 하고, 또 이렇게 편지까지 띄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왜 홍석천님과 동성애와 커밍아웃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이 편지를 겁 많고 선입견에 사로잡혔던 한 이성애자의 자기고백으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소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의 답을 이야기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지요. 그런데 이 물음을 안고 소설을 쓰다보면 난감한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놓았던 규범과 가치체계가 흔들리는 순간이기도 하고 사회적 금기들을 넘어서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예전에는 이데올로기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 경상도 촌놈인 제게는 페미니즘과 동성애가 가장 벅찬 문제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란 곧 '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겠지요. 앙드레 지드는 '배덕자'라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나를 과연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제 겨우 태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인간으로서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내가 알아야 할 것이었다.'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그러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진지한 고민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누구를 사랑할 것이냐의 문제도 제기되지요. 릴케 같은 이는 성별에 관계 없이 '영혼의 교감'을 추구하였지만,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이 고민들을 거치면서 이성애자가 되기도 하고 동성애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지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 된다는 뜻입니다. 어둠에 갇힌 병아리는 자신을 가둔 알을 깨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 할 따름이지, 알을 깨고 난 다음 어떤 자세로 비상할 것인가까지 미리 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과 비난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습니다. '길종섭의 쟁점토론'(10월 5일-동성애, 어떻게 볼 것인가)에 참석한 한 토론자는 에이즈를 옮기는 부도덕한 인간으로 동성애자를 밀어붙이더군요. 동성애의 문제가 과연 도덕과 부도덕, 질병과 완치의 문제일까요? 저는 그들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범죄자라거나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범죄자나 환자로 만든 우리 사회의 여러 제도와 환경이 문제겠지요.

홍석천님의 커밍아웃의 파장은 상상외로 대단했습니다. 방송 3사에서 일제히 동성애와 관련된 다큐멘타리와 토론의 장을 마련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정작 홍석천님이 왜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물음은 파묻히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는 차별 대우 수준을 넘어 소외당하고 박해받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커밍아웃까지 하면 더 많은 제약들이 가해지겠지요. 방송활동에 커다란 타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홍석천님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꼴이지요. 홍석천님은 왜 삶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질 지도 모르는 이 일을 감행한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다시 '배덕자'를 통해 홍석천님의 커밍아웃을 이렇게 바라보려 합니다. '자기를 남과 분리시켜 놓고 있는 것, 구별짓고 있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던 것이다. 나 이외의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도 없었던 것, 내가 말해야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커밍아웃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지요? 부디 끝까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옳다고 믿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자신보다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행히 홍석천님의 곁에는 홍석천님을 도와주는 친구들이 적지 않군요. 예쁜 홈페이지를 둘러보면서, 3300명이 넘는 지지서명자를 보면서, 이제 우리 사회도 소수의 인권을 지키고 보호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제5회 인권영화제가 이화여대에서 열리는군요. 개막식 사회를 홍석천님이 보신다니 기쁨이 두 배입니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홍석천님의 까까머리가 더욱 빛나겠군요. 이제 곧 텔레비전에서도 그 모습 자주 뵙게 되기를 빕니다. 건강하세요.

김탁환(건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