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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의 작은 유럽/방배동 프랑스촌 사람들]

입력 | 2000-10-17 19:06:00


[유럽과 한국이 문화적으로 만나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에는 미국인이 많이 사는 탓에 유럽인은 ‘백인소수인종’이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앞두고 서울의 프랑스촌 사람들을 만나봤다.]

“Bonjour(안녕).” “Comment ca va(안녕).”

오전 8시50분. 서울 서초구 방배동 ‘프랑스 마을’.

벽안의 여성들이 자녀의 손을 붙잡고 방배중학교 앞을 걸어내려가면서 서로들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 시간대에 이 곳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동차 운전자는 열에 아홉이 프랑스인이다.

에콜 드 프랑세. 한국에 하나 뿐인 프랑스 학교가 이곳에 있는 탓에 방배중 일대는 500여명의 프랑스인들이 모여산다.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인 오전 9시와 오후 4시이면 이곳은 늘 프랑스인 학부모들로 붐빈다.

3개월전 르노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카트린느 르미스도 여느 때처럼 세 살박이 딸과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학교에 바라다 주고 방배중 앞 공터에 대기 중인 관광버스에 올랐다.

목요일은 CFC(Circle de Franco―Coree·한불모임)에서 마련하는 ‘한국 문화 탐험’ 날. CFC는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과 프랑스어를 하는 한국 주부들의 모임. 매주 목요일 호림박물관이나 이천 도자기 마을, 김치박물관 등 한국의 다양한 ‘문화 현장’을 찾는다.

10시 50분쯤 민속촌에 도착했다. 이미 주차장은 관광 버스들로 꽉 들어차 있다. 지방에서 단체 소풍을 온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로 민속촌은 붐볐다.

아이들은 카트린느 일행을 보고 ‘헬로’를 외치며 수십명씩 몰려 들어 짧은 영어로 용감하게 말을 걸어왔다. ‘세계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푸른 눈의 코 큰 사람들은 여전히 신기한 존재였고 ‘서양 사람〓미국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 “프랑스, 프랑스”하고 말하던 카트린느는 곧 포기하고 “나도 파리에 있을 때 동양인과 마주치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11시 반. 민속촌 내 공원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길놀이패들이 꽹가리와 장구를 치며 공터로 들어섰다. 길놀이패는 빙빙 돌면서 흥을 돋웠지만 이들의 표정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상모돌리는 사람들이 옆으로 몸을 돌면서 시각적인 변화를 주자 조금 관심을 보였다.

길놀이패의 공연이 끝나자 이번에는 널뛰기 ‘체조’가 이어졌다. 그러나 ‘코리안 시소’는 춘향이 한복의 고운 자태를 뽐내며 단아하게 널을 즐기던 그 널뛰기가 아니었다. 빨간색 댕기로 머리를 날렵하게 묶은 젊은 여성 4명이 금박장식이 번쩍이는 노랑저고리에 빨간 ‘미니스커트’, 그 밑에 빨간색 짧은 쫄바지를 받쳐입은 개량 한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훌라후프, 부채, 반짝이 장식을 단 탬버린, 리듬체조선수들이 쓰는 리본을 들고 나왔다.

널뛰기가 시작됐다. 한사람씩 번갈아 탄력있게 공중에 뛰어올랐다. 3∼4m씩 솟아오른 상공에서 이들은 훌라후프로 줄넘기를 하거나 부채춤 동작, 탬버린 치기, 리본돌리기 등 ‘서커스’에 가까운 다이내믹한 공연이 펼쳐졌다.

“Oh la la!”

이번에는 이들의 입에서 감탄과 함께 열렬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널뛰기공연이 끝나고 점심식사 시간. 옛날 주막같이 꾸며놓은 야외 식당으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았다. 주막의 이국적인 차림보다는 상위의 먼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는지 이들은 한 장씩 휴지를 꺼내 상과 수저, 컵을 닦았다.

샤를르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300개도 넘는 종류의 치즈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까탈스럽고 개성이 강한 프랑스인을 꼬집어 설명했지만 민속촌에서는 이들은 전원 군말없이 비빔밥으로 ‘통일’했다.

아셈을 앞두고 코엑스에서 하는 유럽영화제가 화제로 올랐다. 이 모임의 대표인 쟌비에르 메이는 “아셈 때문에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고 들었는데 프랑스 문화원 외에는 문화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없다”며 “영어로 된 공연 정보지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어려움을 말했다.

다음주 문화 탐험 현장은 서울 남산골의 한옥거리으로 정해졌다.

오후 4시. 반나절간의 ‘한국 문화탐험’이 끝나고 방배동에 도착했다. ‘서양사람〓프랑스 사람’일 수 있는 유일한 동네. ‘라 센느’니 ‘르 씨엘’이니 하는 낯익은 불어 간판이 보였다. 횡단보도 앞의 ‘아땅시옹(attention)’이나 ‘마르쉐 디수(march¤ d’Isou·이수시장)’등의 불어 버스 표지판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거리문화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근처 ‘파리 크라상’에 들렀다. 빵집에는 프랑스 국기와 함께 ‘프랑스빵 코너’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아이들의 하교시간. 이들은 서둘러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