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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홍찬선/입으로 하는 경제개혁

입력 | 2000-10-05 18:35:00


‘잦은 회의와 구호처럼 요란한 정책발표’를 남발하고 있는 현정권은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생각나게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했다고 선언한 지 1년도 안 돼, 다시 ‘제2의 IMF위기’론이 확산될 정도로 상황이 나빠진 것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업구조조정이다, 금융개혁이다 해서 수많은 정책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는 것이 없어 시장의 신뢰를 잃었던 것이다.

4일 대통령 주재로 확정해 발표한 ‘4대부문 12대 집중실천과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제시된 과제는 ‘2기 경제팀’이 출범했을 때와, 금융감독위원회가 9월22일발표한 ‘2단계 금융조정추진계획(블루프린트)’을 재탕 삼탕한 것에 불과했다. 새로운 것이라고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경제를 챙기기 시작했다는 ‘과시’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2, 3차례 발표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인 ‘부실대기업 판정기준’은 당초 예정보다 5일가량 늦어져, 그것도 충분한 검토도 하지 못한 채 5일 발표됐다.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우차를 10월20일까지 매각하겠다는 금감위원장의 말과 10월중에 우량은행 합병이 가시화된다고 예고했던 재정경제부 장관의 말은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많다.

김영삼 정권은 수많은 ‘개혁’을 했지만 결국 IMF 위기라는 불명예를 안고 마감되고 말았다. ‘신경제 5개년계획’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외환제도개혁 세제개혁 금융종합과세 부품소재산업육성 등 한달이 멀다하고 ‘획기적인’ 대책들을 쏟아냈지만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정부상태로까지 가버린 ‘의료분업’처럼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혁콤플렉스’에 떼밀려 이런저런 정책만 발표하는 것으로는 신뢰만 잃을 뿐이다. 대통령 주재의 잦은 회의나 미사여구로 포장된 발표보다는, 장기판의 졸(卒)처럼 한발 한발밖에 전진하지 못하지만 후퇴하지 않는 자세로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