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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월드]中-바티칸 '해빙'서 '냉전' 회귀

입력 | 2000-10-03 18:44:00


《지난해 말 수교 직전에까지 갔던 중국과 로마가톨릭교회 교황청의 관계가 성인을 추대하는 시성식(諡聖式)을 둘러싸고 큰 마찰을 빚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은 1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순교한 선교사와 신자로서 의무를 다하다 목숨을 잃은 중국인 120명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시성식을 가졌다. 이 광경은 TV를 통해 세계에 생중계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날 시성식에서 이들을 성인으로 추대한 것은 순수한 종교적 의미를 가진 것일 뿐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로마 교황청의 사제 임명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중국정부는 시성식에 대해 당초부터 반대했다. 중국 외교부는 1일 시성식이 강행되자 즉각 항의성명을 냈다. 성명은 “성인으로 추대된 사람 가운데는 중국에서 강간과 약탈을 자행한 인물도 있다” “시성식은 중국 인민에 대한 도발이자 중국 인민의 감정과 중화민족의 존엄을 크게 훼손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인민일보는 ‘성인인가, 죄인인가’란 사설에서 교황청이 성인으로 추대한 순교자 가운데는 당시 제국주의 침략을 돕거나 여기에 직접 참가한 인물이 끼어 있는데 이들은 중국 인민이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강조했다.

신화통신도 ‘선교사와 서방열강’이라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성인으로 추대된 선교사들의 문제점을 ‘폭로’했다. 프랑스의 선교사였던 오귀스트 샤들랭은 1844년 중국에 입국해 활동하다 1856년 처형되면서 제2아편전쟁의 발단이 된 인물. 중국은 당시 그가 허가지역을 벗어나 불법선교 활동을 했으며 광시(廣西)지역에서는 토비(土匪)들과 결탁해 교세를 넓히고 부녀자를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또 1900년 의화단사건 때 숨진 한 이탈리아 선교사에 대해서 인민일보는 “결혼을 앞둔 중국 처녀를 데리고 잤으며 수녀들과 방탕한 생활을 했고 홍수 구제를 위해 방출한 정부의 구휼미를 천주교 신자한테만 나눠주는 악덕을 자행했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 충칭(重慶) 여우양(酉陽) 등지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사건’도 실은 무리한 선교활동 때문에 일어났으며 결국 서양열강이 중국 침략을 하는 구실이 됐다는 것이 중국측의 논리다.

시성식에 대만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도 중국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성인으로 추대된 120명의 명단은 대만천주교회가 편찬한 ‘중화 순교 성인전’이란 책을 근거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중국측은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기록을 토대로 시성식을 강행했다”며 “교황청이 편견과 진실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를 읽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인민일보도 “성인으로 추대된 120명 중 86명이 의화단사건 때 숨진 사람인데 이들 모두가 신앙을 위해 순교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교황청은 시성식 다음날인 2일 “누구도 잘못을 피할 수 없으며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용서를 구할 것”이라며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다.

중국과 교황청은 49년 중국 공산화와 더불어 관계가 단절됐다. 이후 중국은 교황청의 사제 임명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거 교황청이 관할했던 110개의 중국 각지 천주교구도 ‘천주교회 애국회’라는 관영단체를 통해 관장하고 있다.

교황청은 그 후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해왔으나 중국은 국교수립의 전제조건으로 대만과 단교할 것, 교황청은 독자적인 사제임명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 등을 내걸고 있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가장 논란이 많은 사제임명권에 관해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지기도 했다. 즉 해당국 정부가 제청한 사제 후보 가운데 교황청이 임명하는 이른바 ‘베트남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수교 직전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시성식이 있던 1일 중국은 파룬궁(法輪功) 추종자들이 벌인 톈안먼(天安門) 시위를 강력히 진압, 1000여명을 체포함으로써 ‘사교(邪敎)’에 대한 단속의지를 과시했다.

종교는 누가 뭐라 해도 정부 관할 아래에 있다는 점을 세계에 상기시킨 셈이다. 이번 시성식을 계기로 깊게 파인 중국과 교황청 간의 ‘감정의 골’ 때문에 중국과 바티칸의 수교 일정은 더욱 멀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교황청 관계일지■

1298년

마르코폴로 ‘동방견문록’ 출간.

1322년

프란체스코회 수사 오도릭 데 포르데노네,

교황사절로 중국 방문.

1642년

스페인 선교사 프란시스코 데 카필라,

중국에 상륙. 1648년 순교.

1659년

도미니크회 수사 도밍고 나바레테, 1664년까지 중국에서 선교. 그 이래 다수 선교사 중국서 활동.

1840년

아편전쟁

1856년

프랑스 신부 오귀스트 샤들랭 순교.

제2아편전쟁 발발.

1900년

의화단사건으로 외국선교사 대규모 피살.

1943년

교황청, 국민당정부와 수교.

1949년

중국 정부수립.

1999년

중국―교황청 관계개선 가속화.

2000년 9월

교황청, 아이체카레이 추기경을 베이징종교평화회의에 파견.

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