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외 다른 행성에 건설된 유토피아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 주십시오.”
1987년, 출판 기획자 오슨 카드는 작가들에게 소설 청탁서를 발송했다. 작가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인지 책은 묶여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SF작가 마이크 레스닉은 청탁서를 받고 머릿속에 전등이 켜지는 것 같았다.
“다른 작가는 극단화된 문명을 이야기로 쓸 것이다. 반대로 나는 지구의 문명화에 저항해 외계를 택한 부족을 그려보리라. 관습과 주술, 금기가 살아있는 문명이전 부족의 이야기를….”
아프리카 대초원의 기후에 맞춰져있는 행성 ‘키리냐가’. 케냐 키쿠유족이 서양 문물을 거부한 채 옛 생활양식 그대로 삶의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땅이다. 주인공은 부족의 주술사인 코리바.
발부터 태어난 아이를 ‘저주받았다’며 살해하고, 글 배우기 원하는 여자아이의 소망을 일축해 자살로 이끄는 코리바는 문명의 눈으로 볼 때 이해 불가능한 인물이다.
‘땅과 조화를 이루며 단순하게 사는 삶’을 유토피아로 단정짓는 그에게 서구인의 ‘합리’와 부족의 ‘합리’는 화해할 수 없는 층위를 이룬다.
젊은이들은 문명세계를 동경하여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코리바의 지혜로 감당하기 힘든 부족의 정신적 균열이 ‘유토피아’를 위기에 빠뜨린다.
작가는 ‘문명―자연’의 이분법속에 한 편에 서기를 거절한다. 모든 개인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문명이란 존재하는가? 자연과의 친화란 인간의 지배를 자제하는데서만 얻어지는가? 작가가 행간에 숨겨놓은 수많은 질문에 응답하면서 그의 숙고에 동참할 수 있는 데 책의 매력이 있다.
‘풍부한 상상력과 재미가 담겨있고, 전(全) 은하적으로 위대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린 서평. 각권 260쪽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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