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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최우영/납북어부 아버지를 그리며

입력 | 2000-08-21 18:48:00


사랑하는 아버지.

13년 만에 아버지를 불러봅니다. 지금 이 순간 아버지를 불러보지만 아버지에 대한 모습은 13년 전 그대로입니다. 호탕하시면서도 자상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셨을 때도 매일 집으로 전화해 우리들을 염려하셨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주 저희들에게 편지도 보내주셨던 43살의 아버지입니다.

아직도 제 책상 위에는 그 때의 사진과 아버지가 남기고 간 어머니께 보낸 편지, 저와 동생에게 보낸 편지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어버린 저로서는 사진 1장과 편지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남겨져 있습니다.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면 유일하게 아버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사진과 편지를 보고 또 보며 아픈 마음을 달래곤 합니다.

6월에는 분단 55년 만에 남북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어머니와 동생과 저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혹시라도 남북한 지도자들이 아버지를 비롯한 납북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보내지 않을까 해서 였습니다. 비록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도 납북된 동진호 선원들의 귀환문제가 전제조건이었지만 그 때도 비전향장기수 이인모씨만 송환되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근황조차 알 수 없었던 쓰라림이 있었지만요.

하지만 저와 납북자 가족들은 또 한번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씁쓸함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간첩으로 내려왔던 비전향장기수들은 북으로 송환되지만 강제로 납치된 아버지를 비롯한 납북자 가족들에 대해선 남북한 어디에서나 외면당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계시다는 소식을 국가정보원에서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왜 거기 계셔야 합니까. 단지 고기를 잡던 아버지께서 하루 300g의 옥수수가 전부인 그 곳에 계시다니 말입니다. 하루 4시간의 수면 외에는 오로지 노역만 하며 노예처럼 사는 그 곳의 실태를 책을 통해, 혹은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접할 때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괴롭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말들을 듣는 고통과 글을 읽는 고통 뿐이지만 아버지는 그 고통을 직접 겪고 계실 것이라 생각하니 비록 자유로운 곳에 살고 있는 저 역시 피눈물이 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고통을 제가 대신해서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제발 나 잘 있으니 걱정마라"는 한마디라도 제게 전해 주세요. 이 딸이 이토록 목이 메이도록 찾고 있는데 제 소리가 들리시나요. 몇 년 전부터 비전향장기수들은 남북한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북에 있는 가족들과 서신을 교환했고 최근에는 비전향장기수가 북한에 있는 딸과 전화로 통화하는 장면을 TV에서 봤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지만 인권이 그 무엇보다도, 주권보다도 우선함을 믿으며 인권의 사각지대, 남북한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사각지대에 계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귀환을 위해 이 딸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 아버지 제발 살아만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