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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오키나와 주민 反美감정 달래기 연설

입력 | 2000-07-21 19:58:00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주일 미군 때문에 화가 난 일본 오키나와(沖繩)현민들을 달래기 위해 21일 현지에서 연설을 했다.

이날 오전 오키나와에 도착한 클린턴 대통령은 헬기로 갈아타고 곧바로 이토만(絲灣)시 마부니(摩文仁)의 ‘평화의 비’로 이동했다. 태평양에 면한 마부니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오키나와에서 최후의 전쟁이 벌어졌던 곳. 미군에 쫓긴 주민들이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이야기로 유명하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전쟁의 비참함을 상기시키는 상징적인 장소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나미네 게이이치(稻嶺惠一) 오키나와 지사의 설명을 듣고 비석 앞에서 묵도를 올렸다.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오키나와를 찾은 클린턴의 발걸음을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방문한 이상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메시지를 남기지 않을 경우 반미감정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 연설을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연설 서두에서 전쟁중 숨진 오키나와 주민들의 희생에 대해 애도를 표시한 뒤 “오키나와는 아시아의 평화와 미일안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감사했다. 또 “일본 면적의 1%도 안되는 지역에 대부분의 미군기지가 집중돼 있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키나와 주민과 학생, 미군 과 미군군속 등 500여명의 초청자들이 클린턴의 연설을 경청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곳에는 서로 총을 겨눴던 적군과 아군 사망자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는 특별한 곳”이라며 “그들의 화해가 지금까지 우리들이 쌓아온 미일관계에 희망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를 기념해서 오키나와내 대학생들의 하와이 대학연수를 지원하는 장학금제도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축소에 노력하겠다”며 “일본정부와 합의한 정리계획을 착실히 수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그의 연설에 앞서 “미군기지의 정리 축소를 마음으로부터 희망한다”고 말한 이나미네 지사의 요구에 원칙적인 답변을 한데 그친 것이다.

한 참석자는 “듣기좋은 말은 많이 했으나 미일 안보태세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클린턴 대통령은 미군기지문제는 양보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교 3년생인 오미네 아키코(大嶺明子·18)는 “클린턴 대통령이 평화문제와 기지문제에 대해서까지 언급을 해줘서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며 클린턴과 악수까지 해 기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현직대통령이 오키나와 주민의 마음을 달래는 연설을 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행사장 밖에서는 한 시민단체 대표가 “미국만을 위해 가데나(嘉手納)공군기지를 유지하고 있는 범죄자 클린턴에게 철퇴를 내리자”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며 항의시위를 했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연설은 10여분만에 끝났지만 연설내용의 평가를 둘러싼 찬반논쟁은 훨씬 오래 갈 것 같다.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