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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대근/대법원과 대법관

입력 | 2000-06-25 19:41:00


우리나라 법원사(法院史)에 ‘대법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5년 10월11일의 일이다. 당시 미 군정청이 일본인 판검사를 전원 면직하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판검사를 임명하면서 사령장에 최고 법원을 뜻하는 그들의 용어인 ‘Supreme Court’를 ‘대법원’으로 번역해 적었고 이를 군정청 관보에 남겼다. 우리나라 근대 사법제도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재판소구성법(1895년 3월25일 공포)에는 오늘날의 대법원이 ‘고등재판소’로 나와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고등법원이 그 역할을 했다.

▷1948년 제헌 국회는 입법, 행정, 사법의 분립과 재판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을 만들면서 최고 법원인 대법원에 대법관을 두도록 했고 이에 따라 48년 8월5일 가인 김병로(街人 金炳魯)선생이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또 그 해 11월1일에는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5명의 대법관이 탄생했다. 대법관이란 용어는 5·16 이후 1962년 12월 개정된 헌법에서 ‘대법원 판사’로 바뀌었다가 1987년 헌법 개정 때 다시 대법관으로 원상 회복됐다.

▷대법원은 국민의 권리 구제는 물론 ‘무엇이 법인가’를 최종적으로 선언한다는 점에서 1, 2심 법원과 구분된다. 법령 해석의 통일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심을 통해 하급법원의 재판을 올바르게 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80년 8월 당시 양병호(梁炳晧)대법원판사는 김재규 내란음모사건 상고심에서 신군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내란 목적 살인으로 볼 증거가 없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가 보안사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결국 강제로 법복을 벗기도 했다.

▷엊그제 대법원장이 신임 대법관 6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사법시험 합격 순서에 따른 서열을 파괴했다는 대법원측의 설명대로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법과 양심을 생명으로 하는 법원에서도 이같은 ‘서열 파괴’가 필요한 것인지 의아할 정도다. 그것이 꼭 ‘개혁’인지 의문이다. 이러다간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는 얘기가 법원 주변에서도 나오는 건 아닌지…. 대법원이 이번에 철저하게 산술적 지역 안배를 했다는 점도 서열 파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퇴색시켰다는 생각이다.

dksomg@dom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