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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닷컴기업 현주소]"수익모델 없다" 돈줄 '뚝'

입력 | 2000-06-21 19:31:00


《인터넷 열풍과 함께 각광받았던 닷컴기업들이 시련기를 맞고 있다. 미국에선 닷컴기업들이 암선고를 받고 기다리는 환자와 같은 신세가 됐다. 심지어는 현금이 바닥날 것이라는 블랙리스트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까지 차세대 미래기업으로 지목됐던 기업들도 명단에 들어 있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서울벤처밸리엔 언제 열풍이 불었는지 모를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다. 올 가을엔 닷컴기업들이 대란을 겪을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 현실화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닷컴기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미국과 한국의 닷컴기업들의 현주소를 비교해본다.》

▼한국 ▼

반의 반 토막이 난 코스닥 주가, 뚝 끊어져 버린 투자자들의 발길. 벤처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테헤란로 서울벤처밸리엔 ‘탈(脫)벤처’ 분위기가 완연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금맥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대던 벤처의 메카가 갑자기 ‘폐광촌’으로 변해 버린 느낌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게임 개발업체 A사의 김모사장(33). 3개월 전만 해도 투자 의뢰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지만 오후 3, 4시 한창 바쁜 시간에도 개인 전화 2, 3통이 전부였다.

IP업체인 P사를 지난달 그만 둔 이모씨(30)는 “하루 2∼3시간 자면서도 2000만원 내외의 연봉에 만족했던 것은 스톡옵션 때문인데 이마저 코스닥 폭락으로 인해 기댈 언덕이 못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평당 400만원을 넘는 임대료에도 불구, 2∼3개월은 기다려야 사무실을 얻을 수 있던 일도 이미 옛 일. 곳곳에 사무실 임대 입간판이 눈에 띈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사무실 재계약을 포기하거나 맡겨 놓은 보증금에서 임대료를 까 나가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반전에는 벤처 대표 주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

벤처투자회사 디스커버리벤처스의 김정국이사(32)는 “대표적인 인터넷 벤처들이 자금 상황이 좋을 때 수익 모델을 만드는 대신 무조건 회원수만 늘려 나가는 ‘대마 불사’ 전략을 썼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실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이사는 “기관투자자나 사주 등은 이미 챙길 건 다 챙기고 빠져나갔다”며 “추가 자금 지원도 없을 전망이어서 조만간 자금 조달에 실패한 우량 벤처들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최대 증권정보 제공업체 P사의 김모팀장(31)은 “건실하다는 벤처도 월 1억원 내외의 배너 광고가 수익의 전부인데다 해외 진출을 꾀할 만큼 기술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근 증자 등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 인터넷 기업 중 상당수가 자금 확보에 실패하고 있다. 투자 대상 기업을 고르는 벤처캐피털의 시각이 전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바뀌어 ‘더욱 분명한 옥석 가리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국내의 대표적 투자전문업체인 A사. A사는 최근 인터넷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잠정적으로 전면 중지했다. 내부적으로 인터넷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지침을 다시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상황은 A사뿐만이 아니다. I사와 S사 등 다른 투자업체들도 최근 특정 업체에 대한 투자를 자제하는 등 투자 방침을 보수적으로 전환했다. 이미 투자를 받은 업체 가운데도 광고와 홍보에 지나치게 비용을 많이 쓴 업체들은 신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형편. 따라서 지난해 상반기에 투자받은 자금이 떨어져 가는 7월이면 상당수 업체들이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7월 위기설’까지 서울벤처밸리에 횡행하고 있다.

ebizwiz@donga.com

▼미국 ▼

지금 미국 증권가에서는 두 개의 ‘닷컴 기업 살생부’가 나돌고 있다.

하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자매지인 배런스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공개한 것이다.

특히 미국 시간으로 19일 발표된 배런스의 살생부는 ‘이대로 가면 이 정도밖에 더 못 산다’는 뜻의 잔존 수명을 개월 단위로 나타내 충격을 주었다.

이 명단에 오른 닷컴 기업들의 주가는 올 3월 20일 최초 발표 때보다는 낙폭이 덜했지만 거의 예외 없이 하락했다. 나스닥지수는 3.35% 급등했으나 자금 사정이 나쁘다고 평가된 아마존 e베이 등 쟁쟁한 인터넷업체들의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배런스의 ‘현금 고갈’ 상태란 영업면에서 적자를 보면서도 향후 영업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번에 조사 대상에 포함된 미국의 1·4분기 결산 닷컴 기업들은 매출은 전분기에 비해 20%가량 늘었음에도 지출은 24%가량 줄여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마이너스의 현금 흐름을 보여준 업체는 3월 238개에서 이번에는 227개로 줄어들었다.

이중 29%에 달하는 66개사의 경우 현금이 향후 1년안에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3개월 전 59개사보다 늘어난 것으로 그만큼 기업간 차별화가 뚜렷이 진행됐음을 시사한다.

미국에서 닷컴 기업들의 운명이 도마에 오른 것은 작년 4·4분기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이들 기업의 주가가 올 들어 폭락하면서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 동안만 해도 미국 인터넷업체들의 주가는 하락세를 거듭해 시가 총액이 1조4000억달러에서 6930억달러로 50% 이상 줄어들었다. 투자자들의 종목 선별 기준이 막연한 성장성에서 수익성으로 바뀌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 작년 연말에 많이 풀렸던 돈이 회수되면서 은행 문턱이 높아진 탓도 크다.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