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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선의 뮤직@메일]죽은 음악, 산 음악

입력 | 2000-04-11 19:50:00


《가수들과 ‘가족’처럼 일하는 방송사 가요 담당 PD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가요계의 현실은 어떨까? 인기가요 프로그램을 10년 가까이 연출해 온 KBS 박해선PD의 ‘뮤직@메일’을 주 1회 연재한다.》

기타 하나로 목청껏 노래하는 고(故)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보면 그가 얼마나 가요를 사랑했으며, 가요가 갖는 놀이적 요소보다 사유적 요소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리메이크란 그 원전을 향유한 세대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자 재발견이며, 음악이 일회적인 것만이 아니요 살아 숨쉬는 생명체임을 느끼게 한다.

듀엣 ‘유리상자’에 이어 조성모 이은미까지 세 가수가 리메이크한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는 세상에 얼굴을 내민지 12년이 지난 지금 더 유명한 곡이 되었다. 원래는 하덕규의 신앙적인 고백을 담은 참회에 가까운 노래였지만, 조성모의 목소리와 음악적인 재구성에 의해 가슴저리는 사랑노래로 바뀌어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요즘 이러한 대중음악의 리메이크가 우리에게 화두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샘플링이라는 음악생산 방법의 변화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가 컸던 1998년의 표절 시비를 거쳐, 1999년에는 강한 비트의 반복으로 점철되는 테크노 열풍이 연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혼성 모방에 가까운 샘플링의 범람은 멜로디 위주의 음악에 대한 수요를 간과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늘날 과거의 ‘좋은 음악’을 차용하는 리메이크 앨범이 나오게 된 것이다.

가요에서 정체성이라면 송창식의 독창성이나 김수철의 실험이 떠오른다. 반복과 비트의 세대를 중화시켜 줄 이 시대의 음유시인으로 소리꾼 장사익 한 사람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비즈니스와 스타주의가 만연하면 인물은 살아도 음악은 죽는다. 음악이 죽으면 시간이 흐른 뒤 반추할 세월의 노래가 남지 않는다.

대형체육관 콘서트로 건재함을 과시한 흰 수염 웃자란 나훈아와 음악적 숙성을 위해 휴식하고 있는 조용필이 우리 마음 속에 어떤 기대로 자리하며, 위안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미래에 차용될 지금의 음악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박해선(KBS2 PD·시인)

▼필자약력▼

△83년 홍익대 도시계획과 졸업

△83년 KBS PD로 입사

△92년 ‘노영심의 작은음악회’ 연출

△94년 ‘기쁜 우리 젊은 날’ 연출

△95년 ‘이문세 쇼’ 연출

△95년 시집 ‘늑대와 삐비꽃’ 출간

△96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연출

△현재 ‘이소라의 프로포즈’ ‘감성채널21’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책임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