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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민병욱/정치와 검댕

입력 | 2000-02-25 19:33:00


큰 스승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다. “정치를 하려 합니다. 도움말을 주십시오.” 그러나 스승이 보기에 그는 아직 정치를 할 만한 그릇이 안됐다. 그래서 문제를 내 맞추면 정치를 하도록 하라고 얘기했다. 문제-“두 소년이 굴뚝 청소를 함께 했다. 끝나고 보니 한 명은 얼굴에 검댕이 많이 묻었고 다른 소년은 깨끗했다. 누가 세수를 하겠는가.” 청년의 답-“그야 검댕이 묻은 소년입니다.” 스승-“틀렸다. 아직 정치할 때가 아니다. 소년들은 서로 상대의 얼굴을 보기 때문에 검댕이 묻은 소년도 제 얼굴이 깨끗한 줄 알 것이다.”

▷청년은 그러자 알겠다며 한 번 더 문제를 내줄 것을 간청했다. 스승은 또 똑같은 문제를 냈다. 청년은 의기양양하게 “그야 당연히 얼굴이 깨끗한 소년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스승은 이번에도 “자네는 아직 정치할 때가 되지 않았네”라고 싸늘하게 말했다. 불만에 찬 청년이 이번에는 무엇이 틀렸는지 얘기해 달라고 했다. 스승의 답은 간단했다. “이보게, 둘이 함께 굴뚝청소를 했는데 어떻게 한 명만 검댕이 묻고 다른 한 명은 깨끗할 수 있나. 둘 다 세수를 해야 옳은 것 아닌가.”

▷유대인의 평생 교과서라는 ‘탈무드’에 나온 것을 원용한 얘기다. 여기서 굴뚝을 정치현장, 소년들을 정치인이라고 상정해보면 그 의미는 더욱 맛이 난다. 굴뚝이 없는 집이란 있을 수 없다. 또 굴뚝을 청소하는 사람도 꼭 필요하다. 어느 사회, 어느 나라이건 정치가 없을 수 없고 정치인도 꼭 필요한 존재다. 그러나 어느 굴뚝이건 그 속엔 더러운 검댕이 가득 차 있기 마련이고 누구든 청소하겠다며 좋은 뜻을 가지고 굴뚝에 들어간다 해도 몸 가득히 검댕을 묻히고 나올 수밖에 없다.

▷4·13총선전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굴뚝과 검댕의 얘기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마다 잘났다며 검댕이 가득한 정치판을 이제는 개혁해야겠다고 소리치지만 그들은 기실 제 몸에 검댕이 가득 묻은 것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들어가고 나가고 찢어지고 깨지고 욕하고 게다가 돈 냄새도 나고…. 아무리 비하해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이 정치이긴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min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