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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의 두얼굴]'시민운동 386' vs'정계진출 386'

입력 | 2000-02-15 20:28:00


자욱한 최루탄 연기와 빗발치는 곤봉세례, 그리고 그 속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절규했던 그들. 데모 한번 안 해본 학생은 학생 취급도 못 받던 격변의 80년대 ‘386 운동권’들이 21세기 벽두 한국정치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한쪽은 정치권의 ‘물갈이 붐’을 타고 총선 출마를 준비중인 ‘젊은 피’들이고, 다른 쪽은 ‘시민에 의한 유권자혁명’을 꿈꾸는 시민운동가들.

함께 독재에 맞섰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386들. 이들은 왜 각자의 길을 걷게 됐으며 시민운동에 남은 이들은 정치권으로 간 ‘옛 동료’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정치인 386’으로 각광받는 이들은 대부분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이인영 오영식(이상 고려대) 임종석씨(한양대) 등은 전대협 의장을, 이철상(서울대) 김영춘 허인회(이상 고려대) 우상호 송영길씨(이상 연세대) 등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이들은 대부분 당시 학생운동의 주류에서 활동했고 화려한 연설 능력을 자랑하던 간판스타들이었다. 반면 ‘시민운동가 386’은 당시 비공개운동의 조직자로서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90년대 들어 ‘비폭력 공개운동’ ‘전문분야를 통한 시민사회 개혁’을 앞장서 역설한 ‘새로운 운동’의 주창자들이다.

이들 ‘조직가’들이 사회의 변화를 절감하고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택했다면 ‘간판스타’들은 널리 알려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택한 셈이다.

총선시민연대 김기식(金起式·서울대 85학번)사무처장은 총선에 출마하는 옛동지들에 대해 “보스정치 지역구도가 판치는 정치권에서 얼마나 변화를 일궈낼지 걱정되지만 모두 젊고 유능하니 잘 해나갈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이 정도는 점잖은 반응에 속한다. 대부분의 ‘시민운동 386’들은 ‘정치인 386’의 정치개혁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한 시민운동가는 “정치개혁의 동력은 정치권 내부에서는 생기지 않는 법”이라며 “젊고 개혁적인 인물 몇몇이 들어간다고 정치권이 정화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한 386 정치인은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지역구도 정치에 변화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운동가와 개혁적 정치인이 각각 자신의 영역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올바른 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고 주문했다.

그런가 하면 이들이 정치를 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보다 ‘기존 정당’의 간판을 선택한 데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한 시민운동가는 “그들에게 정말 개혁 열망이 있었다면 국민의 뜻을 모아 새 개혁정당의 형태로 정치에 진입하는 게 옳았다”며 “이들은 개혁정당 건설이라는 멀고 험한 길을 피해 ‘당선 가능성’의 달콤한 열매를 택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이들이 정치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능력을 더 갈고 닦아야 한다는 충고도 적지 않다. 총선시민연대의 한 시민운동가는 “이들에게서 총학생회장 이미지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며 “자기만의 전문분야에서 능력을 갖춘 뒤 정치를 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며 성급함을 지적했다.

“아무도 그들에게 386의 대표 권한을 준 적이 없다. 그들의 경력도,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도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싸웠던 모든 386세대들의 것이다. 이들이 이미지만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수의 386세대들은 또다시 정치 냉소주의에 빠질지 모른다.” 한 시민운동가가 ‘정치인 386’에게 주는 충고다.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