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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이시형/젊음과 경륜의 조화 필요

입력 | 2000-01-09 19:54:00


희망찬 미래 세계를 향해 여는 아침에 시비를 걸자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젊어지고 있다. 거기에 위험 요인은 없는지 진지하게 논의해 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지난 40년, 우린 고도의 경제 성장, 급변하는 사회변동으로 인해 젊은이의 새로운 지식과 융통성 순발력 적응력 저돌성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였다. 사회 모든 분야에 젊은이의 등장, 약진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다. 보수적인 늙은 머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대변혁기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최근의 경제 불황은 늙은 세대의 퇴출을 강요했다. 명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비싼 임원부터가 해고 대상이었다.

요즈음 한국의 어느 사무실에 가봐도 중늙은이 얼굴 하나 찾기가 힘들어졌다. 더구나 사이버니 벤처니 하는 새로운 기업군의 위세 앞에 늙은 세대는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 컴맹으로 천대받고 개혁의 걸림돌로 지탄받는다. 변해야 산다는 이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늙은 세대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직 예외라면 정치 무대뿐이다. 40대 기수론에서 70대까지 이어온 탓이리라.

과연 이렇게 사회 전분야가 갑자기 젊어져서 될 일인가. 이제 우리는 냉철히 그 공과를 따져 봐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에 젊은이의 순발력 있는 대처 양식은 절대적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이 절로 난다. 젊은 방송작가의 원고를 읽노라면 새로운 감각에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여론을 선도하는 방송국이 이렇게 젊은 손들로만 만들어져 괜찮을까 싶은 걱정이 들 때도 있다. 시사 보도를 하는 앵커도 모두 젊은 얼굴들이다. 연출도 젊고, 작가도 젊고, 방송국은 젊음 일색이다. 노련하고 경륜이 많은 작가, 연출자, 그리고 MC도 있었으면 균형도 잡히고 신뢰감이 갈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난 30년 전 평기자로 나를 인터뷰한 사이언스 잡지의 아이징거 기자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이미 백발이 희끗희끗했는데 지난번 NY학회에서 우연히 부닥친 그는 지금도 옛날의 평기자 명함 그대로였다. 40대만 되면 벌써 데스크 뒤에 앉아야 하는 우리와는 그 무게에서 다르다.

사회의 모든 조직엔 균형과 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 없이는 자칫 독선으로 흘러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우린 한때 혜성처럼 기업계에 나타난 ‘겁없는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잠시 반짝하다 그만 유성처럼 지고 만 ‘위험한 아이’들. 우리 사회에 엄청난 부담과 부작용을 남긴 채 그들은 갔다. 그 조직에 어느 노련한 원로가 있어 “회장님, 그것만은 안됩니다”고 말리는 세력이 있었던들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국회도 언제나 신진 야당의 목소리가 인기다. 주인이 아닌 손님 입장에서 하는 비판의 소리가 인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라는 언제나 인기 없는 보수당의 생각대로 되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당장은 인기가 없어도 그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단칼에 해치우겠다는 수많은 개혁이 초기의 위세와는 달리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다. 안전 위에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국민의 보수성 탓이다.

획일적인 정년제도 이젠 폐지되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고령화 사회의 노인 복지를 위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조직의 균형과 활력을 위해서다.

이젠 나이와 관계없이 능력과 실력의 싸움이다. 시원찮으면 40대에도 퇴출이다. 젊은이도 기다리면 절로 굴러떨어지는 높은 자리가 아니다. 이젠 싸워서 뺏어야 하는 자리다. 아래 젊은이가 시원찮으면 언제까지 늙은 할아범이 그 자리를 지키게 될지 모른다. 뺏기지 않으려면 늙은 세대도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조직에 활력이 넘칠 것이다. 노인이 있으면 조직이 동맥경화증에 걸려 발전이 없다고 한다. 그게 젊은 세대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해 보일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연공서열은 차츰 가고 있다. 당연한 추세다. 능력에 맞게 보수도 책정되어야 경쟁력이 유발된다. 이럴 수 있을 때 비로소 세계시장에 살아남을 수 있다.

신구, 남녀의 균형과 견제의 조화가 가장 효율적인 경쟁 체제다.

이시형(성균관대 의대 교수·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