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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충식/다시 평가되는 張勉

입력 | 1999-08-27 18:29:00


‘그는 한국에서 한 50년쯤 시대에 앞선 인물이었다. 온화하고 정중한 성품의 장면(張勉)으로서는 60, 61년이라는 격동기에 본질적으로 온화하지도 정중하지도 않은 한국정치 환경에서 호된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5·16쿠데타 당시 미CIA한국지부장을 지낸 피어 드 실바의 회고담 이다. 당시 장면총리가 쿠데타군의 진격 보고를 듣고 미국대사관 문을 두드리다가 여의치 않자 찾아간 곳이 바로 실바의 집이었다.

▽그러나 실바 집의 문도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장면은 수녀원에 몸을 숨겼다. 거기서 40시간을 보내는 동안 쿠데타는 뒤엎을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장면이 택한 은신처는 바로 그의 정치적 기반을 상징한다고 한 정치학자는 분석했다. 미국과 가톨릭에 의해 정치에 ‘초대’된 그가 반사적으로 그런 은신처를 떠올린 것이라고.

▽장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자취를 더듬고 재평가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그의 제2공화국이 세워놓은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국토개발사업은 고스란히 박정희 군사정부에 수용되고 추진되어 3공의 치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장면은 경제관료를 중시하고 민간의 경제관련 건의를 폭넓게 받아들인 인물이었다. 장면정부가 무능 무기력의 상징 정부인 것처럼 알려지게 된 것은 군사정권의 의도적 공세때문이라는 게 여러 학자들의 지적이다.

▽장면은 권모술수와 거리가 먼, 정도를 걸으려 한 인물이었다. 관용과 대화의 정신을 존중하고 다원화한 시민사회를 지향했던 그를 우유부단하고 정치력이 없었다고만 매도할 수는 없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요 양심적인 교육자이기도 했다. 학자들은 이제 그를 ‘실패한 권력자’라고만 볼 게 아니라 총체적인 면모를 재조명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호를 딴 운석(雲石)연구회와 유족들은 9월27일부터 일민미술관에서 유품과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연다.

김충식sear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