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서 자기를 닮은 인형에 흥미를 보이듯이 인간이 자신을 닮은 로봇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적 바람이 아닐까 싶다.
특히 로봇이 여러 감성을 두루 갖추고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상호반응할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요즘 컴퓨터 기술이 급격히 발달해 우리의 많은 욕구를 채워주고 시간도 절약해 주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이는 만질 수 있는 실체를 가진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 인간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서로 부딪히며 살아갈 수 있는 휴먼 로봇의 등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아침마다 커피를 끓여주고 집안 청소를 해 주며 빨래부터 다림질까지 대신해 주는 로봇, 우리가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로봇의 등장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우리 연구팀은 5년간 만들어온 휴먼 로봇 ‘센토’의 최종 공개 발표회를 열었다. 신문기자들과 TV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잔뜩 몰려왔다. 기자들은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무던히도 기다려야 했다. 시작시간도 예정보다 늦었지만 실제 시연회도 평소 준비할 때와 달리 통신장애로 자주 끊겨 애를 태웠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가끔 ‘센토’가 진짜 살아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날도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해서 일부러 태업을 한 것만 같았다. 심술을 부려 아예 못하겠다고 벌렁 드러눕지나 않을지 끝날 때까지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앞서 리허설을 할 때도 예전에 걸음마 연습을 하다 넘어져 다친 ‘센토’의 손목 근육이 자꾸 말썽을 부려 대대적 ‘수술’을 두 차례나 해야 했다. 설마 수술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괜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나를 고등학교 입시장에 보내 놓고 같은 심정이셨을 게다.
사실 연구자로서 인간의 모습과 기능을 가진 휴먼 로봇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로 매력적인 일이다. 다리는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힘은 얼마나 세게 할까? 손가락은 세 개로 할까 네 개로 할까? 로봇이 조립되고 이윽고 전기가 흘러 ‘피가 통하고’ 로봇이 첫 발자국을 내디딜 때의 그 기쁨은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센토’의 얼굴은 몸통 부분이 거의 다 만들어진 뒤 가장 나중에 만들었는데 어떤 이미지가 가장 어울릴지 많이 고심했다. 내가 로봇에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은 16년 전 독일 유학시절부터였다.
그 이후 로봇을 만드는 한 분야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 볼 때 참 행운인 것 같다. 연구란 영어로 ‘research’라고 한다. 한번 찾아보고(search) 실패하면 또다시 찾는다는(re―search)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결과에 대한 오랜 기다림과 의지를 필요로 하는데 우리의 여건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연구 결과에 대한 조바심, 연구 결과를 몇 가지 단순한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은 과학자들의 창의성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무한한 과학기술의 경쟁 시대라고 한다. 우리의 과학, 아니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개개인이 자신의 일에 책임감과 아울러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워나가듯 그렇게 애정을 갖고 말이다.
김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