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승승장구하는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서 ‘자귀모’가 또 하나의 쾌거를 거둘 수 있을까?
올 여름 한국영화 ‘빅3’로 꼽히는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유령’ ‘자귀모’ 등 3편. 이 중 먼저 개봉된 ‘인정사정∼’과 ‘유령’이 호평을 받으며 흥행순위 1,2위를 달리고 있는 요즘, 충무로의 관심은 14일 개봉할 ‘자귀모’에 쏠려 있다. ‘자귀모’는 서울시내 33개의 상영관(전국 90개)에서 개봉된다. 이는 역대 한국영화사상 최다 개봉관 기록.
제작비 25억원을 들인 ‘자귀모’는 국내 특수효과 기술력이 이제 상당한 수준에 올랐음을 확인시켜준다. 20분 동안 선보이는 특수효과는 어색한 느낌없이 매끄럽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귀모’는 특수효과 그 자체가 목적인 듯한 인상을 지나치게 심어주면 곤란하다는 점을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97년 삼성영상사업단 주최로 열린공모전에서최우수상을탔던 ‘자귀모’의 시나리오는 자살한 귀신들이 동아리를 만든다는 기발한 착상에서 출발했지만 세공과 정련의 흔적이 너 미약하다.
이광훈 감독은 영화의 전체적인 짜임새보다 개별 상황에서의 잔재미 추구에 지나치게 몰두한 듯하다. 영업귀신 역의 명계남과 박광정, 저승사자 역의 정원중 등 단지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배역들이 너무 많다. 성격이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이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의 세세한 숨결을 살려내기 보다는 영화를 종잡을 수 없는 단편적인 장면들의 모음으로 보이게 만든다.
자살한 귀신 김희선이 변심한 애인에 대한 복수를 노리다 마음을 돌리는 장면, 갑자기 동료귀신 이성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장면 등도 설득력이 약하다. 출세를 향한 차승원의 선택 등은 TV에서 너무 많이 쓰여 진부하기까지 한 에피소드들.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했지만 정작김희선과이성재의로맨스는 특수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끼워넣은 듯한 장면들과 자잘한 사건들에 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결국 ‘자귀모’는 코미디와 멜로, 공포가 뒤섞인 혼성장르의 영화이지만 배합의 시너지 효과를 얻지 못한 채 밋밋한 ‘눈요깃감’영화에 그친 느낌이다. 탤런트 김희선을 선망하는 10대 여중고생이 가장 좋아할 영화. 그러나 ‘자귀모’는 강간장면 등 몇몇 대목 때문에 ‘18세미만 관람불가’를 받아 든든한 후원자가 돼줄 관객층과 만나기 어렵게 됐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