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8·15 경축사 내용을 본 뒤 ‘대응(對應)’ 기자회견을 하려던 계획을 앞당겨 9일 회견을 갖고 ‘제2창당’의 깃발을 올렸다.
이총재가 회견을 앞당긴 것은 국민회의의 신당창당 움직임과 YS의 민주산악회(민산) 재건 움직임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신진인사 적극 영입 계획은 국민회의의 신당창당 움직임을, 한나라당이 대여투쟁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YS의 민산 재건 움직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또 이총재가 이날 회견에서 DJP의 내각제공약 파기를 집중공격한 것은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로 여론이 악화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 입장에서는 내각제공약 파기 문제를 계속 국민의 관심권 안에 잡아두어야 정국주도권을 장악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총재는 김대통령이 임기말 개헌을 통해 정권연장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를 장기집권 음모로 규정하고 이를 분쇄하는 데 모든 것을 걸겠다고 강조한 것이나 대통령제 당론 고수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은 이런 가능성에 일찌감치 쐐기를 박아두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앞으로 개헌논의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선제공격 성격도 짙다.
그러나 이총재가 ‘반DJP 투쟁’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3김정치 청산’과 ‘제2창당’을 제시했지만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구상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3김청산’을 강조하면서도 ‘3김’을 극복하기 위한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YS의 민산 재건 움직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총재의 ‘한계’로 지적할 만하다.
또 ‘제2창당’을 통해 당풍을 쇄신, 여권에서 이탈한 민심을 끌어안는 동시에 당을 더욱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의지도 밝혔지만 ‘뉴밀레니엄위원회’ 구성 등 설익은 아이디어 제시에 머물렀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이총재는 지역할거와 패거리정치에 의존하는 ‘3김’과 달리 ‘새 정치’를 추구하겠다는 화두를 던진 것”이라면서 “앞으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하나하나 제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