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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101억 소송」

입력 | 1999-05-28 19:21:00


국민회의는 한겨레신문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데 이어 법원에 사상 유례없는 1백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현존하는 법적 구제방법을 총동원해 언론사 공격에 나선 것이다.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를 본 자연인이나 법인은 누구나 언론사를 상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 있다. 그러나 이번 국민회의의 대응은 언론을 위축시키려는 속셈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그 분별없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신문은 26일 ‘3·30 재보선때 국민회의가 50억원을 썼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는 소장(訴狀)에서 ‘이는 오보이며 그로 인해 당과 관련 당간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도내용의 진실여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몇가지 점에서 국민회의에 득(得)보다 훨씬 큰 실(失)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민회의측은 이성을 잃은 나머지 정상적 궤도를 크게 이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 이번 소송은 다분히 감정적이며 언론에 대한 협박의 성격까지 갖고 있다.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할 경우 우선은 언론중재위에 중재를 신청, 그 결과에 따라 다음 구제방법을 찾는 것이 상례다. 국민회의측이 언론중재위 제소와 함께 고소와 소송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들고 나온 것은 아무래도 과잉대응이다. 더구나 배상청구액을 1백1억원이라는 거액으로 잡은 것은 구체적 근거가 없이 다분히 정치적 효과만을 노린 ‘전술적 액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보도내용이 6·3재선거에 악재로 작용할 것 같으니까 얄팍한 선거전략으로 소송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둘째, 걸핏하면 고소나 맞고소, 소송을 내고 보는 정치권의 송사만능(訟事萬能) 풍조를 드러냈다. 이런 풍조는 당장 여론의 비판을 조금이라도 희석시켜 보려는 정략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정치권이 평소 법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면서 툭하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다는 것은 법을 정파적 이익 내지 정치의 수단 정도로 보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셋째,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를 염원하는 민심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태도를 노출시켰다. 언론이 ‘돈선거’의혹을 제기하면 우선 면밀한 자체조사로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하든가, 관계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공당(公黨), 더욱이 집권당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3·30재보선때 국민회의가 동특위(洞特委)를 구성한 것이 문제가 돼 이미 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수사의뢰된 상태가 아닌가. 집권당은 보다 이성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