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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윤상현/적도 동지도 아닌 美-中관계

입력 | 1999-05-16 20:47:00


미중(美中) 양국은 97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방문과 98년 빌 클린턴미국대통령의 중국방문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큰 틀을 설정했다.

두 나라는 이러한 표면적인 관계발전에도 불구하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교차되면서 우방도 적도 아닌 어정쩡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으로 미중관계는 톈안(天安)문사태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나토의 유고공습이 시작된 이래 중국은 나토의 군사개입이 유고에 대한 주권 침해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대만이나 티베트 문제와 관련해 유사한 외세 개입을 사전에 견제해야겠다는 현실적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19세기 중엽 이후 근 1세기에 걸쳐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한 굴욕적인 주권침해를 경험해 주권문제에 대해 지극히 민감하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은 주권에 대해 ‘성가실 정도로 강조한다’고 말했다. 자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에 입각한 역사적 자부심과 근현대사에 걸쳐 겪은 국가적 수모가 묘하게 얽혀 중국은 강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지닌 외교정책 성향을 보여준다.

중국 지도부는 학생과 시민들의 반미시위를 중국인민과 공산당 정부가 결속하는 계기로 삼고있으며 반미시위를 부추기는 경향마저 보였다. 그러나 부정부패 실업 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중국지도부로서는 6·4 톈안문사태 10주년을 앞두고 자칫 반미시위가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현정권 퇴진운동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적당한 선에서 통제를 했다.

중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내적 단결을 과시하고 일관성있는 대미 강경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하나의 대립축으로서의 위상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가입, 핵기술 절취, 인권, 위성통신기술 이전과 같은 미중현안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의회내 공화당 보수세력에서 반중국론이 확산되거나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중국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사건의 장기화를 원치 않을 것이다. 중국으로서도 장기적 전략적 안목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의 양자관계 중 가장 그 향방이 불확실한 것이 미중관계이다.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으로 악화된 미중관계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에까지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4자 회담에서 미국의 독주는 견제할지라도 이로부터 탈퇴하거나 회담자체를 장기 지연 또는 결렬시키는 상황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 양국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이해를 함께하고 있으며 양국관계의 근본적 악화는 서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