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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칼럼]어떻게 「아홉수」 넘길까

입력 | 1998-12-25 21:59:00


99년을 눈앞에 두고 보니 ‘아홉 수 넘기기 어렵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끝이 아홉으로 끝나는 해에 유달리 어려움이 많다는 뜻이어서 바짝 긴장하게 된다. 대한민국 건국 50년사에 어렵지 않았던 해가 어디 한 번이나 있었느냐만, 그래도 회고해보면 아닌게 아니라 아홉으로 끝난 해야말로 글자 그대로 다사다난의 해였다.

▼ 난제 산적한 1999년 ▼

49년에는 중국이 공산화되는 동북아시아 정세의 큰 변혁 속에서 국내적으로 주한미군철수, 국군 몇몇 대대병력의 월북, 김구(金九)암살, 남로당 국회 프락치사건 등으로 어수선하더니 이듬해 마침내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59년에는 재일교포의 북송이 시작돼 한일관계가 더 나빠지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큰불이 다섯 차례 일어난 데다 건국 이후 가장 큰 태풍이라던 사라호가 삼남지방을 엄습했고 경향신문 폐간과 조봉암(曺奉岩)처형 등 자유당 정권의 말기 증상이 두드러지더니 이듬해 마침내 4·19가 일어나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졌다.

69년에는 닉슨독트린의 선언과 동시에 주한미군 감축이 논의되는 상황속에서 북한의 미 해군정찰기 격추사건이 일어나 국민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3선개헌이 강행돼 국내적으로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3선개헌으로부터 꼭 10년 뒤인 79년에 10·26이 일어나 박정희(朴正熙)정권은 무너졌고 80년의 참극이 잉태됐다. 이어 89년에 재야인사들의 잇따른 밀입북사건과 전교조(全敎組)논쟁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확산되던 터에 5공청산문제를 둘러싼 여야격돌이 심화됨으로써 국내정치는 중심을 잡지 못했다.

건국 이후 여섯번째의 아홉 수인 99년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인가.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99년말부터 대공황의 여건이 조성될 것이며 2000년에는 마침내 대공황이 ‘미국 비즈니스 제국’을 붕괴시킬 것이고 이것을 계기로 세계자본주의의 몰락이 시작될 것이라는 불길한 경고가 이미 확산되고 있다. 이 경고가 불행히도 적중하는 경우,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다. 특히 오는 봄과 여름 사이에 대기업의 빅딜이 불가피하게 빚어낼 새로운 실업자군(群)의 등장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양산된 실업자의 수를 크게 늘려 사회적 불안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화의 시대에는 전지구적으로도 잘사는 나라 2할, 못사는 나라 8할, 개별국가에서도 잘사는 계층 2할, 못사는 계층 8할로 나뉘는 이른바 2대 8의 구도가 나타나리라는 미래학자들의 전망이 우리나라에서도 적중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 北核-내각제 갈등일듯 ▼

그러나 저러나 더 크게 염려스러운 부분은 북한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비교적 ‘태평스러운’우리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매우 심각한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서 이 의혹을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해소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군부 강경파가 더 큰 힘을 쓰는 가운데 개혁개방쪽으로 보다는 대결쪽으로 행동하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오는 봄과 여름 사이에, 아니 1년 내내 북한핵 의혹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될 개연성이 높다.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도 잇따를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이처럼 매우 어려운 상황에 국내정치는 소모적인 내각제 논쟁에 빠져들 것 같다. 우선 공동정권 내부에서 갈등이 커지고 어쩌면 결별사태도 벌어질지 모른다. 한나라당은 그대로 온전할 것인가. 2000년의 16대 국회 총선을 앞두고 다시 합종연횡의 정계개편이 시작된다면 국민은 참으로 피곤해질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국가 자체가 쇠퇴의 길에 접어들지 않는다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 지도자들 사심 버려야 ▼

99년의 아홉 수를 잘 넘겨야 한다. 1999년, 아홉이 세 번 겹친 이 해를 슬기롭게 마무리지어야 우리는 밝은 2000년을 맞이할 수 있고 희망에 넘치는 21세기를 열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동정권의 지도자들이 사심을 버리고 자기희생의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 권력의 향배에 신경을 쓰지 말고 국가의 명운에 신경을 써야 한다. 2000년 총선에서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2000년 새 시대의 개막을 위해 물러난다는 생각을 갖는 편이 좋을 것이다. 건국 50년사에 공보다 과가 많았고 덕보다 죄가 많았던 지도자들은 99년과 함께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그나마 겨레와 나라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 국민 모두도 자성의 해로 삼아야 하겠다. 진부한 표현 같지만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나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자는 뜻이다.

김학준(인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