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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성교수 「가족이야기」시리즈展…『오백나한상이 모티브』

입력 | 1998-04-22 07:24:00


삼라만상(森羅萬象)의 합창.

우주 만물이 각각의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합과 공존을 노래한다.

황영성교수(57·조선대 미술대학장)의 최근작 ‘가족 이야기’시리즈. 아이의 해맑은 웃음, 소 울음, 자동차 경적, 새의 지저귐, 송사리의 날랜 몸짓, 꽃의 속삭임이 함께 어우러진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

황교수는 30여년의 화력을 가졌지만 1백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회는 처음이다. 두 군데로 나뉘어 5월6일까지 열린다. 갤러리 현대(02―734―8215)와 박영덕 화랑(02―544―8481).

96년부터 3년여간 그린 ‘가족 이야기’시리즈다. 상당수는 지난해 파리의 팔레 데 콩그르를 비롯해 런던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의 헨리 무어 갤러리 등에서 전시, 유럽인들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특히 황교수를 파리 초대전으로 이끈 미술 평론가 필립 다장은 “주변의 만물을 다양한 기호로 표현함으로써 간추려진 현대 우주론을 보는 듯하다”며 “오늘날 숨가쁜 혼돈에 대해 명확한 비전과 질서를 제시한다”고 평했다.

‘가족 이야기’시리즈에 나오는 등장 인물은 일일이 셀 수 없다. 사람 원숭이 새 닭 호랑이 뱀 나비 벌 꽃 물고기 과일 문자 굴뚝 비행기 자동차 탱크 석탑 등 생물과 무생물이 단순화된 기호로 각각의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그 작은 기호들은 일종의 덧없는 장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발 물러서 한묶음으로 바라보면 공존의 강한 울림을 토한다. 마치 화폭 밖에 있는 사물들도 그 공간에 끼여들고 싶다고 호소하는 듯한 느낌.

황교수의 설명.

“따로 있으면 무의미한 낱낱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관계를 형성합니다. 가족은 바로 이런 어울림의 축제가 아닐까요.”

황교수는 70년대부터 가족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그러면서도 10년을 주기로 그 가족의 지평이 넓어진다. 이번 ‘가족이야기’에서는 각각의 방이 기하학적으로 증식되는 듯.

70년대는 사람 초가 소 등 농촌의 목가적 분위기를 토속적으로 그렸고 80년대 가족은 마을 단위로 넓어졌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는 이번 전시회의 그림처럼 한국을 벗어나 보편적인 우주 가족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작가가 그동안 멕시코 페루 인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가족 체험’을 형상화했다.

특히 80년대 말부터 시도한 단색(單色)의 ‘가족도’는 주요한 변신. 황교수는 “단색은 각각의 주장을 생략, 전체적인 통일성을 강조하기 위한 시도인 반면 다채로운 색채는 하나 하나의 이야기를 드러내 또다른 화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의 모티브는 어릴 적부터 봐 온 광주 증심사의 오백 나한상. 황교수는 “오백 나한 하나하나가 다른 삶의 체험을 가지고 있는데도 한자리에 모여 또다른 가치를 형성한다”고 말했다.

황교수는 국내 전시가 끝나는대로 5월 미국 시카고 아트 페어, 9월 뉴욕 아트 페어에 출품한다.

〈허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