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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납치사건]「中情공작」남은 수수께끼들

입력 | 1998-02-21 20:10:00


‘김대중(金大中)납치사건’의 책임자였던 이후락(李厚洛)전중앙정보부장의 나이는 올해 74세다. 인간의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사건 발생후 25년간 그 진상에 대해 입을 다물어왔다. 본보가 중정 비밀문서인 ‘KT공작요원 실태조사보고’문건을 입수, 공개했지만 이씨쪽에서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본보 특별취재팀이 그가 살고 있는 경기 광주군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집을 비운 채 잠적한 상태였다. 이씨는 납치사건과 관련, 아직 풀리지 않은 몇가지 수수께끼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김대중씨 납치를 직접 지시했느냐의 여부는 이씨 외에는 알 도리가 없다. 통상 중정의 특수공작이 대통령 결재 없이 구두지시만으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박대통령의 납치지시 여부는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피해자 김씨는 “박정희대통령이 ‘김대중을 해치워 버려’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이후락씨가 최영근(崔泳謹)전의원에게 말했고 나는 이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어떻게 그런 엄청난 사건이 대통령 지시없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정황논리를 제기해왔다. 당시 이후락씨로부터 납치지시를 받은 이철희(李哲熙)전중정차장보도 “이후락씨가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고 말해 밑에서 반대해봤자 취소되는 명령이 아닌 것으로 감을 잡았다”고 말했다. 납치가 이부장의 ‘윗 선’ 즉, 박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박대통령의 지시를 뒷받침하는 논거는 사건 4년후인 77년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 단상에 섰던 김형욱(金炯旭)전중정부장의 증언에서도 등장한다. 김씨는 “박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증거는 없지만 내 경험으로 봐서, 대통령의 양해 없이 (납치사건을)저지른다는 것은생각할수없다”고말했다. ‘박대통령 지시설’에 대한 반론은 이후락씨 본인과 박대통령 측근인사들의 주장이 주를 이룬다. 이씨는 87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하늘에 맹세코 박대통령이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씨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자신의 과잉충성으로 납치사건을 저질렀다는 얘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사건 당시 중정 차장이었던 김치열(金致烈)씨의 증언도 비슷하다.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내무장관 때인가 청와대에 업무보고를 하러 갔는데, 보고도중 (박대통령의)얼굴이 험악해지면서 ‘왜, 쓸데없이 납치사건 같은 것을 일으켜가지고 김형욱이까지 외국에서 저렇게 떠들게 만드는지…’하고 굉장히 짜증을 냈다”고 말했다. 당시 CIA한국책임자였던 도널드 그레그 전주한미국대사도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대통령은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공개된 중정의 KT공작문서 내용은 팽팽하던 양측 주장의 저울추를 어느쪽으로 움직이게 했을까. 이 문서는 이후락씨뿐만 아니라 후임 정보부장들이 납치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후관리 보고서를 작성, 박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박대통령의 지시없이 저질러진 일에 대해 후임 부장까지 이토록 정밀하게 보고서를 올릴 필요성이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과거 중정에서 공작업무를 담당했던 한 인사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사후 보고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증언만으로는 박대통령의 납치지시가 있었다고 확신하긴 힘들다. 결국 박대통령의 지시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엔 이후락씨가 있다. 이제는 그가 입을 열 때다. ―끝―